어느 날...손녀딸 비앙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가 왔다.

믿을 수 없는 비극적인 소식에 세찬 비바람을 해치고 전화가 온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내 사랑스러운 손녀 비앙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한참을 슬픔에 빠져살고 술에만 기대어 살아왔다.

아들놈은 어느새 자기 딸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었는지 일에만 열중한 채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밉고 싫기만 했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가 언젠가 아내가 내게 말했다.

"여보..너무 술만 먹지말고 나가서 뭐라도 해봐요.."

나도 안다. 이런다고 그 애가 돌아오는게 아니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그 애가 죽었다는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1년만에 나는 내가 운영하던 미용실에 다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가게가 열리자 왔었던 단골 손님들이 들어왔다.

"어르신 대체 어디갔던거에요? 어르신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내 머리 모양이 어떤지 알아요?"

"미안하네 비안테 일이 좀 있었어"

내가 가볍게 웃으며 얼버무리자 그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미용실을 잘 찾아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이고 정겨웠다.

그의 나이는 20대 후반인데 보통 이 때엔 잘나가는 미용실에 가기 마련일터인데 그는 오로지 내 미용실을 찾아왔다.

한참 이발을 마치고 있던 와중에 한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었다.

무슨일이지?

"어서오세요. 머리 깎으러 오셨나요?"

그녀는 머뭇 거렸다.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가 기다리자 그녀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출장도..되나요?"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가 마침 스케줄이 비었음을 기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환히 웃었다. 하지만 그리 썩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나는 이발도구들을 챙기며 애엄마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죠?"

내가 묻자 그녀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더니 계단 밑을 가리켰다.

"여기로요"

계단 바로 밑? 무슨 생각으로 그럴까?

보통은 장난하는거냐는 둥 화를 내겠지만 내겐 이제 화를 낼 기력조차 없다.

나는 계단 밑을 바라봤다.

거기엔 전동휠채어를 탄 소녀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 전동 휠채어로는 내 미용실에 올라올 수 없어서 그랬구나

나는 단번에 이해하고 환한 표정으로 애엄마를 안심시키려고 한마디 말을 했다.

"제 출장비 걱정은 안하셔도 되겠는데요?"

애엄마는 내 말이 고마웠는지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고 말했다.

가방을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비안테가 마음에 걸렸다.

아직 다 마무리도 못지었는데 스스로 정리하는 그의 뒷모습은 내 마음을 찔리게 했다.

하지만 비안테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어르신 난 이미 차례가 끝났잖아요'라고 입모양으로 말해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열어 계단을 내려가 소녀 옆에 섰다.

자세히 보니 소녀는 장애가 있는 아픈 친구였다.

머리 상태도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어떤 미용사인지 몰라도 장애인이라고 막 잘라준 모양이다. 나쁜 녀석

나는 소녀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우리 공주님?"

자세히 보니 약간 귀여운 외모를 가진 친구였다.

우리 비앙카도...많이 이뻤는데...

"어...어...이..뿌...게..."

어눌한 목소리로 이쁘게 잘라주세요 라는 말을 하자 나는 소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뒤 가위질을 시작했다.

어떤 악독한 놈인지 다른 사람도 아닌 이뻐야할 여자 머리를 이렇게 사내처럼 깎아 놓은걸 보니 괜히 화가 났다.

반드시 이쁘게 만들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녀의 머리를 다듬었고 마침내 그녀의 머리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삐죽삐죽 솟은 머리가 이젠 나름 아리따운 숙녀처럼 얌전해졌다.

애엄마가 지갑을 꺼내려하자 나는 애엄마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 출장은 서비스입니다. 아이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애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일까봐 아예 뒤로 돌아버렸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소녀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우리 이쁜 공주님은 이름이 뭐야?"

"......카.."

"음?"

"..비...앙....카.."

순간 천둥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그래...비앙카..구나...이쁜 이름이야.."

애엄마가 이제 가야할 것 같다며 휠채어 손잡이에 손을 올렸고 바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비앙카의 뒷 모습을 보며 나는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우리 비앙카가...잠시 내게 온거였다면...나는 그녈 눈치채지 못한걸까?

자책감이 들었다.

"할...부...지!"

멀리서 들여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비앙카가 손을 흔들며 기쁜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었다.

"고..마..압..습니...다!"

나는 그 소녀의 모습과 내 하나뿐인 손녀 비앙카의 모습이 겹쳐지는 환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밝게 미소지었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진 못했다

비앙카가 뒤돌아서 다시 가자 나는 눈을 감고 미련으로 남은 비앙카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기로 마음먹고 작별을 고했다.

"내가..더..고맙단다..우리 사랑하는 비앙카"

장애인에게 불편한 계단마저 커트해버셨군♥︎

이발사: 네 미용비 5천원 출장비 3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