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aPark17.05.31 23:16
상속과 증여세는 받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기회 조절의 측면일지 몰라도 개인이 이미 보유한 재산에 대한 권한 행사라는 측면에서 상속을 하는 사람에게는 결과에 대한 조절 측면이 됩니다. 둘 중 하나만을 말씀하시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속 및 증여세율의 경우 소득세 최고세율이나 심지어는 불로소득세율보다 높기에 그 정도가 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기회나 과정에 있어서의 형평성 조절이 이미 잘 이루어졌다면 이토록 과도한 결과적 형평성에 대한 조절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실패한 어느 경제 이념을 반석으로 삼아 보았을 때, 이 중 결과에 대한 조절은 가장 지양돼야 할 최후의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이고요. 결과적 조절은 절대적으로 금지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조절의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할당량이 세금입니다. 이 때 같은 금액이라도 형편에 따라 다른 의미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를 조절하고 유지하기 위한 형평성 차원에서 세율이 달리 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금이 비록 강제성을 띠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환원 자체는 강제될 수 없습니다. 본인의 자산을 본인이 원하는 곳에 이용하는 것이 현재 우리 경제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성을 기본으로 하되, 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사회적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는 판단이 있는 경우에만 자유에 대한 제약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펴볼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상속과 증여 자체가 해악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번 오뚜기의 경우에서 보듯이 원칙을 지키며 이뤄지는 상속과 증여의 경우 반드시 그것이 해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편법 및 불법적인 상속 및 증여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편법 및 불법이라고 한다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는데, 이번 삼성의 경우에서 보듯이 주주들과 공적연금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방식의 합병을 통한 지분가치 상승, 그룹 계열사로서 기업을 세우고 증여자나 상속자에게 지분을, 예를 들어 주당 백 원이라는 싼 값에 모조리 보유하게 하고는 그룹 내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업 가치를 원래의 역량 이상으로 상승시켜 나중에는 주당 만 원으로 지분 가치를 늘리는 방식 등 이러한 편법들은 그 정도와 방식은 달라도 대개는 사회에 커다란 해악이 됩니다.
이런 편법 혹은 불법 행위를 이루기 위한 과정 중에도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이것이 부유층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계층갈등까지 유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편법들은 상속 및 증여세가 지금과 같이 과도하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재벌기업들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이 그들에게 집중되었기에 그렇지 당장 개인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 다가오면 선뜻 원칙을 따르기 힘들다는 판단이 내려질 것입니다. 당장에 예를 들어보면 경품에 대한 제세공과금 22퍼센트나 복권 수령액에서 징수하는 33퍼센트의 세율 등 가만히 앉아 자산이 증식되는 상황에서 내야 하는 세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노력해서 번 돈이 소득세든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이미 적지 않은 세금을 내 왔는데 그렇게 모은 자산의 반 이상이 또 세금으로 나가게 된다면 선뜻 원칙을 따르기 쉬울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부의 재분배나 형평성 유지라는 취지가 각 개인의 도덕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형태가 되어 결국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는 커녕 부유층, 그들을 지켜보는 이하 계층 그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만 불러오는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부의 재분배나 사회 환원을 통한 형평성 조절에 제가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에는 그것이 비록 강제성이 있더라도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분명 내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법을 지키는 것, 병역의 의무를 다 하는 것 등 사회적 약속이자 의무를 지킨다는 것에는 그런 믿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는 정도가 있습니다. 내가 그러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내게 도움보다는 감당하기 힘든 큰 손실이라는 판단이 따르면 그 약속의 이행률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긍적적인 마음보다는 열악한 복무환경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해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 약속들을 지키고 사회를 유지해나가고 있기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도나 약속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하진 않기에, 과도한 부분이 있다면 어느 정도 완화해 지금과 같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속과 증여를 양산하지 말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올바른 상속과 증여의 수와 비율을 증가시켜 형평성 증진과 부의 재분배를 오히려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에 그 편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지금과 같이 증여나 상속자들 대부분이 매도당하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까지도 완화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