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놀드[수정] 02-25 15:59 23.02.25 15:44
어디서 여초발 개 씹주작에 놀아나는 빡때가리 페미발 정보 가져 와가지고 세상의 진리처럼 신봉하네 ㅋ
본론부터 말하면, 밀레바 마리치가 아인슈타인에게 학문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증거는 없기에 학계 주류에서는 이런 주장을 과장된 해석이라고 봄.
1. 논문의 서명이 아인슈타인-마리치 일 뿐, 저자를 아인슈타인-마리치로 발표하지 않았음.
두 이름을 이어 붙인 저자 서명은 결혼 전 밀레바가 아인슈타인과의 첫 아이 리제를 임신한 전후 시기에 힘들었을 때, 당시 스위스에서 관습적으로 서명하던 방식(뒤에 아내의 성을 붙여 적음)을 결혼 전에 미리 사용했던 것. 관련 내용 본문 발췌.
Weinstein, Galina (2012년 4월 16일). “Did Mileva Marić assist Einstein in writing his 1905 path breaking papers?”. arXiv:1204.3551 [physics.hist-ph].
2. 러시아 과학자 요페의 발언에 대한 다닌이라는 작가의 와전.
요페의 발언 : Fizicheskikh Nauk의 부고 기사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이 발표되었을 당시 저자는 무명이던 '아인슈타인-마리치'였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SF 작가 다닌이 요페의 이 발언을 '특수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과 마리치의 공동연구였다'라는 이야기로 와전시켰으며, 이 이야기는 이후 마리치가 원래는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의 공저자였는데 출판된 학술지에서는 이름이 삭제되었다라는 음모론으로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요페는 아인슈타인-마리치가 베른 특허청의 관료(당시 아인슈타인의 직업)라고 밝혔으며 논문이 공저였다는 표현도 사용한 적이 없다. 아인슈타인-마리치는 스위스의 서명 관습에 따라 남편의 성 뒤에 아내의 성이 덧붙여진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하였을 뿐이다. 또, 아인슈타인이 논문을 발표한 독일의 학술지 Annalen der Physik 역시 여성 저자를 차별한다거나 하는 정책이 있지 않았다.
3. 밀레바 마리치의 학업적 성과
아인슈타인은 마리치와 1914년 이혼한 이후에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지속적으로 왕성한 과학적 활동을 하였으나 그녀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졸업에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과학적 결과물을 출판했던 적이 없다. 마리치는 두 번의 도전 끝에, 특히 수학 성적의 부족으로 연방공과대학교 졸업에는 실패하였다. 관련 내용 본문 발췌.
MIT TECH review
https://web.archive.org/web/20150724082027/http://www.technologyreview.com/view/427621/did-einsteins-first-wife-secretly-coauthor-his-1905-relativity-paper/
Pais, A. (1982), Subtle is the Lord... The Science and the Life of Albert Einstein, Oxford University Press
그외에 마리치 본인은 그녀의 친구와 (아인슈타인 본인이 수없이 많은 연구 아이디어를 공유했던) 그의 동료에게 그녀 본인이 그의 연구에 관여되었다는 언급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헬레네 사비치(Helene Savić)에게 보낸 어떤 편지에서도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연구에 관여하였다는 힌트는 보이지 않는다.부부의 첫 번째 아들 한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그녀가 결혼과 동시에 과학에 대한 열의를 상실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문서 발췌
G.J. Whitrow (ed.)(1967), Einstein: The Man and His Achievements, p.19.
결론
여초발 개 씹주작이고 밀레바가 천재라는 소리는 그냥 다른 것도 아니고 수학 성적으로 졸업도 못한 사람이 물리학 공동 논문 저자라는 소리는 개 잡소리고 논문의 공동 연구를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혼을 한 이후로도 아인슈타인이 학술 활동을 한게 언제까진데 밀레바 연구를 가로채서 세계적인 학자가 됬다는 개소리를 그냥 필터도 안 거르고 믿고 올리는 지능과 좋아요누른 페미의 환상적인 하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