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짜로니 이야기

840763No.238782020.01.05 13:46

많은 이들이 짜짜로니는 짜파게티보다 맛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짜짜로니는 삼양의 대표 짜장라면으로써 10년 이상을 장수해 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 라면이 과연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국내 라면업계 최고 브레인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삼양식품개발부에서 정말 그렇게 맛이없다면, 짜짜로니를 존속시킬 이유가 있었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맛의 비밀이 짜짜로니 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많은 대중들이 만만한 짜파게티의 맛 속에서 허우적거릴때 소수였지만 꾸준했던 짜짜로니의 매니아들은 어떤 맛을 즐기고 있던 것일까?

초기 짜파게티 광고를 기억하는가?
강부자와 아이들이 나와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로고를 외치며 주말 식탁에 모여앉아 까만 면발을 후루룩 거리던 그 광고를?

한편 짜짜로니 광고의 컨셉은 무엇이었는가?
다소 희화되어 본래의 의도가 가려지긴 했지만, 중국의 요리달인으로 분한 이경규가 묘기를 부리며 짜짜로니를 요리하여 홀로 고고하게 맛을 보는 것이었다.

이제 감이 좀 오는가?
이 짜장라면계의 두 거봉은 일면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판촉대상, 광고전략, 추구하는 맛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개념에서 출발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차이는 두 라면의 뒷면에 쓰인 조리법을 비교, 대조해 봐도 눈치챌 수 있다.

다음시간에는 과연 짜짜로니가 지향하는 짜장라면의 맛, 두 라면의 조리법 차이가 무엇때문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2005년 9월. 서울 신림동의 고시촌.
우리는 25년간 라면장사를 했다는 한 아주머니와 13년간 점심을 짜장라면만으로 수햏해 왔다는 어떤 고시생을 만날 수 있었다…

“까다로와요. 솔직히 어떤 때는 좀 짜증이 날 정도로… 그런게 매력이랄까?”

13년간을 점심식사로 짜장라면만을 고집해 왔다는 만난 장oo씨(37세). 장씨는 짜짜로니에 대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예민한 수동 카메라라고나 할까요? 유저의 특성과 실력에 많이 좌우되죠.
뭐 그러다보니 맛이 있다는 말도 사실, 없다는 말도 사실이에요.
하하하… 솔직하게 하는 말인데, 세상 뭐 별거 있냐 만사 귀찮아질 땐 짜파게티도 자주 해먹곤 하죠.”

아직 어리둥절해 하는 취재자에게 그는 이리 와 보라며 짜파게티와 짜짜로니 하나씩를 꺼내든다.

“그 라면의 핵심에 가장 스텐다드하게 접근하는 방법은 바로 뒤에 적힌 조리법을 보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곤 하지만, 진리란 대개 교과서적인데 있죠.”

짜파게티의 뒷면에 적힌 조리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물 600ml(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입니다
2.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버린 후 과립스프와 올리브조미유를 잘 비벼드시면 됩니다
3.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한편 짜짜로니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물 500cc(종이컵 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야채스프를 넣고 냄비뚜껑을 연 상태에서 5분 30초를 끓입니다
2. 끓인 후 물을 약 반컵 정도 남기고 짜장소스를 넣어 저어가면서 센 불에 약 1분 30초 이상 볶는다
3. 소스량이 적당량 되면(약 2큰술 정도), 불을 끄고 맛있게 드세요

“어때요 감이 좀 오세요?” 장씨는 빙긋거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마지막에 볶으라는게 차이점인데… 그건가요?” 난감해진 취재자.
“그렇죠? 일단은 그게 차이지요. 그런데 그 이상을 읽어내셔야 합니다.”
장씨는 여전히 빙긋거리기만 하고 대답에 뜸을 들였다.

장씨의 설명은 이러했다.

조리법이란 별게 아닌 것 같아도 라면의 개발자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론낸, 그 라면을 가장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또 사실 대다수의 라면들이 실제 그러하듯) 라면이란 대충 적당량의 물을 부어 면이 적당히 익으면 불끄고 먹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간의 의미를 보셔야 합니다. 짜파게티의 조리법을 보면요…
언듯 보면 뭔가 특유의 조리법을 말하고 있는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무성의해요.
끓여서 면 익으면 물 따라내고 대충 비벼먹으란 말을 괜히 늘려 놓은거죠.
물 3컵 정도라는건 대부분의 라면에 공통입니다.
600ml라고는 말하지만 사실 눈금달린 계량컵 가진 사람은 별로 없어요.
컵으로라도 물 양을 잴 정도면 굉장히 성의가 있는 축에 속하죠.
근데 집에 있는 컵들은 실제로는 사이즈가 제각각이란 말이죠.
그런데도 그렇게 조리법을 써놓은 이유는, ‘사실은 애초의 물 양이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에요. 따라버리면 그만이니까.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버리란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푼이 한두갭니까?
심지어 티스푼이나 군대에서 쓰는 포크스푼도 스푼 아닙니까?
물론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어찌됐든 완성된 짜파게티의 맛은 비슷하니까요.
그게 바로 초딩들도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이유지요.
바로 그게 짜파게티의 대중적인 인기 비결이자 나름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맛의 층위가 중층적이고 고급요리일수록 조리과정에서의 미묘한 차이가 맛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강한 감미료, 설탕 폭격 등으로 맛을 낸 정크푸드일수록 조리과정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도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맛을 유지합니다.
쉽고 빠른 요리, 바로 패스트푸드죠.
각종 푸드 체인점의 중학생 알바도 인기 최고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게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마지막에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먹어도 맛있다는 문구는 그야말로 이런 패러다임의 화룡점정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채도 종류가 한두개가 아니지요, 게다가 생야채는 그 특유의 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곁들여 먹는 종류, 양에 따라 제품 고유의 풍미는 간데없고 맛은 중구난방이 됩니다.
그런데도 상관 없다는 겁니다. 대충 아무거나 곁들여 먹어도 난 모르겠다 라는거죠.
아니면 왠만한 건 곁들여 먹어도 혀가 맛을 혼동하지 않을만큼 이 제품은 강한 맛의 밀도를 지닌다는 자신감일까요?
다른말로 하면 짜파게티는 중층의 섬세한 맛을 포기한 대신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밀도를 극대화하여 어디 내 놓아도 실패는 안하는 맛을 지향한다는 걸 겁니다.
쉽게 얘기해, 인기많은 애들 과자의 레시피죠”
장씨의 설명에 취재자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 그럼… 짜짜로니는 다르다는 건가요? ”
” 다릅니다. 다르고 말구요. ”

취재자의 질문에 장씨의 대답은 단호했다.

“먼저… 다르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우열이 있다는 그런 의미라기보다 장인철학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그런거라는 걸 밝혀둡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짜장라면에 집중하도록 하지요. ”

장씨는 다시 두 라면의 조리법을 대조해서 볼 것을 요구했다.

짜파게티 : 1. 물 600ml(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입니다
2.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버린 후 과립스프와 올리브조미유를 잘 비벼드시면 됩니다
3. 기호에 따라 오이, 양파 등 생야채와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짜짜로니 : 1. 물 500cc(종이컵 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야채스프를 넣고 냄비뚜껑을 연 상태에서 5분 30초를 끓입니다
2. 끓인 후 물을 약 반컵 정도 남기고 짜장소스를 넣어 저어가면서 센 불에 약 1분 30초 이상 볶는다
3. 소스량이 적당량 되면(약 2큰술 정도), 불을 끄고 맛있게 드세요

“짜짜로니의 조리법을 자세히 논하기 전에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갈게 있습니다.
짜파게티의 두번째 문구 어미도 다시보면 흥미롭죠. ‘~하시면 됩니다’ …
우리가 이런 말투를 쓰는건 어떤 때죠?
‘뭐…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걍 대충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이런 느낌이 안 오세요?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소한 어미 갖고 너무 비약하는 것 아닐까?
취재자의 의문제기에 장씨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조리설명서는 누가 작성해서 내리는걸까요? 바로 제품의 개발진입니다.
개발진 수장의 최종결제로 그 문구는 마케팅부나 기획부로 내려지게 되는거죠.
모든 사람의 말이나 글에는 뉘앙스라는게 있습니다.
그 뉘앙스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철학의 단초를 잡아 낼 수 있죠.
물론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문구에는 다소의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잠깐 참고로 짜짜로니의 두번째 문구를 보실까요? ”

“… 볶는다? 아!” 취재자는 외마디 신음을 내질렀다.

” ‘볶는다’ 입니다. ‘볶는다’… 우습죠? 내내 ‘뭐뭐 합니다~’ ‘하세요~’ 하다가 대뜸 ‘볶는다’ 라니요.
이게 뭘까요? 왜 이런 어투가 툭하고 튀어나온 걸까요? ”



(본 시리즈는 KBS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의 나레이터 음성을 연상하시면 더욱 맛이 좋습니다)
” 아시겠지만 이 ‘볶는다’는 것이 짜짜로니 조리의 핵심입니다.
차차 종합적으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조리법의 흐름을 따라가 봅시다”

장씨의 해설이 이어졌다.

짜짜로니의 물 500cc는 짜파게티의 물 600ml보다 적은 양이다.
게다가 정확한 양을 기하기 위해 ‘종이컵 3컵’이라는 알기쉽고 구체적인 설명까지 보충하였다.
또한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냄비뚜껑을 연 상태’에서 끓이라는 지시까지 보인다.

” 맛성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함입니다.
맛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정 최소량의 물에 면과 야채건데기를 삶아서 버리는 물과 맛성분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냄비 뚜껑을 열게 되면 끓이는 동안 수분의 증발로 그만큼 버릴 물도 졸여지게 되지요.
5분 30초라는, 초단위의 시간 지시는 강박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

” 개발진은 제품 하나를 위해 과연 몇천, 몇만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을까요?
면발의 삶아지고 맛이 배어든 상태, 남은 국물의 농도…
하여튼 짜짜로니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500cc의 물을 정확히 재서, 뚜껑을 열고 정확히 5분 30초간 끓여야 한다는 거지요.
근데 이게 끝입니까? 아니거든요.
아직 준비단계였거든요. 이제부터가 본선이지요.
정확히 (종이컵) 반컵 분량의 졸여진 국물을 남기고는 볶아야 됩니다.
짜파게티는 5분이면 끝인데 이놈의 짜짜로니는 ‘5분 30초’나 삶은 다음에 ‘1분 30초 이상’을 또 볶으라는 겁니다.
하하하… 입은 급해 죽겠는데 미치겠지요. ”

사실 라면 물을 끓는걸 기다려 본 사람은 알겠지만 라면의 조리에서 30초, 1분이란 시간은 엄청난 체감의 시간이다.
또한 라면 면발을 두 접시에 덜어 하나를 30초, 1분 뒤에 먹어보라.
그 온도, 불은 느낌 등… 맛의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초단위가 관건인 맛의 예술.
근데 1분 30초, 그것도 그 시간 이상을 볶아야 한다고?

장담하건데. 짜짜로니 좀 볶아봤다 하는 사람들이라도 실제로 1분 30초씩이나 냄비 앞을 지키고 서 있어본 사람의 수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 30초면 칭찬해줄만 합니다. 하하하. ”
장씨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취재기자도 이제야 좀 이해가 가려고 한다.
짜파게티와 짜짜로니의 차이… 조리법의 행간에 숨은 의미…

근데 장씨가 뚱딴지같이 한마디를 또 던진다.
” 근데.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볶는다’가 왜 ‘볶는다’ 일까요? ”
다시 취재기자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취재기자도 이제야 좀 이해가 가려고 한다.
짜파게티와 짜짜로니의 차이… 조리법의 행간에 숨은 의미…

근데 장씨가 뚱딴지같이 한마디를 또 던진다.
” 근데.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볶는다’가 왜 ‘볶는다’ 일까요? ”

다시 취재기자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지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 )

장씨는 짜짜로니 한 봉과 부탄가스렌지, 양은냄비를 내 앞에 내밀고는 직접 조리해보라고 요구했다.
“여기 뒤의 조리법 그대로 정확히 해보시는 겁니다.”

사실 기대가 되었다.
나 역시 봉지 뒤에 적힌 조리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짜짜로니건 짜파게티건 충분한 양의 물에 끓이다가 면이 익었다 싶으면 적당히 물을 따라내고, 스프를 넣은 뒤 조금 볶다가, 비비다가 면발 전체가 골고루 다 까맣게 물들었다 싶으면 불을 끄고 먹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게 대다수 사람들의 라면 끓이기일 것이다.

종이컵 3컵의 물…
5분 30초간 끓인 뒤…
종이컵 반컵의 분량을 남긴다…
(냄비 바닥에 깔린 물에서 종이컵 반컵의 분량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지라 장씨의 도움을 받았다)
1분 30초를 볶는다…

자 드디어 완성되었다. 냄새가 그럴 듯 하였다.
배고픈 차에 일단 한 젓가락 후루룩…

“음… 으음 ?! ”

아. 달랐다. 확실히 평소에 내가 끓여먹던 짜장라면과 맛이 달랐다.
면발과 짭짤한 짜장소스가 미묘하게 겉도는 느낌이라 기피하던, 평소의 내가 끓이던 그 짜짜로니의 맛은 아니었다.
뭐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하여튼, 짜기만 하던 짜장소스가 기름에 볶이면서 본연의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특유의 짜장 향이 드러나고, 그 소스가 면발에 스며들어 하나가 되어서… 등등
뭐, 그런 맛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것 같았다. 한마디로 맛이 있었다.

“자자… 오늘 드실게 많으니까 이건 이 정도로 하시지요.”

장씨는 세번째 젓가락질 하는 내 손을 제지하고는 휴게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맛이나 냄새도 잠시 휴식을 해야 다음 것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장씨는 짜짜로니 한봉을 새로 꺼내더니 본인이 직접 조리해 보겠다고 한다.

13년간 점심을 짜장라면만으로 수햏해 왔다는 장씨.
그는 과연 어떠한 짜장라면의 신공을 보여줄 것인가…
컵으로 물의 양을 재고, 면을 끓이는 과정에서는 장씨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정확히 반컵의 분량만큼의 물을 남기는 눈대중 능력도 몇번 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장씨의 진가는 면을 볶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필자와 같이 면을 들었다 놨다, 혹은 휘젓는 수준과는 확실히 달랐다.
때론 한손으로 냄비를 들썩이기도 하고, 때론 양손의 젓가락으로 면발을 가르기도 하면서 잽싸면서도 다채로운 볶음의 기술을 2분 이상 펼치는 것이었다.

“볶으면서 면발이 꼬이거나 뭉치는걸 막기 위해 라면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서 끓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대로 볶는 것에 자신이 없으신 분은 그런 꼼수를 쓸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어쨌든 관건은 ‘제대로’ 볶는 겁니다. 불기운과 달궈진 기름이 모든 면발의 구석구석을 골고루 익혀주어야 한다는 거죠.”

‘치지이익~ 치직~’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냄새와 소리가 고시원을 가득 채웠다.
소리만 들어서는 무슨 잔치 음식을 하는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뭔 일인가 궁금해하며 휴게실 문을 열고 안을 엿보고 지나가는 고시생들도 여러 명이었다.
라면 하나를 끓이고 볶는데도 이런 내공을 보일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 완성되었으니 드셔보세요.” 장씨는 라면냄비를 내 앞에 내밀었다.

일단 냄새가 내 것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좀 더 제대로 볶아진 어떤 냄새라고나 할까.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 맛있다. 맛이 있다. 아까 전 내 것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맛이었다.
면발 전체에 미끈하게 쫀득한 짜장 볶음막이 빈틈없이 입혀진 듯 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질척한 소스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하였다.
사실 짜장라면을 볶다 보면 탄 맛이 지나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2분 이상을 볶은 장씨의 라면인데도 과도한 탄 맛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향기로운 볶음 요리의 풍미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맛있습니다. 이게 말씀하셨던 짜짜로니의 본연의 맛이군요.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나 장씨는 감탄하며 연신 젓가락을 놀리는 필자를 제지하며 라면냄비를 치우는 것이었다.
장씨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멋적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맛이 있으셨다니 감사합니다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저랑 함께 가실 곳이 더 있습니다.”

장씨가 필자를 데려간 곳은 신림동에서 25년간 라면장사를 해 왔다는 한 분식집이었다.
25년 전통의 분식집이라는 그 곳은 외관상 평범해 보이는 보통 분식집이었다.

장씨가 들어서며 인사하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장씨를 알아보며 반갑게 맞는다.
마침 점심때는 훨씬 지난 오후라 가게엔 손님이 없고 한산한 분위기였다.

“여긴 짜장라면도 해주는 곳이거든요.”
장씨의 귀띔에 벽을 보니 과연 ‘라면’ ‘떡라면’ 옆에 ‘짜파게티’ 라는 메뉴도 있다.

“아주머니 여기 짜짜로니 하나만 해주세요.”
장씨는 어느 틈에 챙겨왔는지 손가방에서 짜짜로니를 꺼내 아주머니를 향해 흔든다.

“뭐 짜짜로니? 아. 그냥 짜파게티 먹어. 무슨 짜짜로니야. 귀찮게…” 눈을 흘기는 아주머니.

“여기 라면 취재하러 온 기자 손님도 있고 해서요. 오랜만이쟎아요~
짜짜로니 하나만 해주세요. 아주머니 솜씨 자랑 좀 하려고 그래요. 예~? ”
장씨는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린다.

기자라는 말에 넘어갔는지 장씨의 애교에 넘어갔는지 투덜거리면서도 장씨로부터 짜짜로니를 건네받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
우리는 분식집 식탁에 마주앉아 라면을 기다린다.

분식집을 둘러보며 장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치이익~’ 하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주방을 엿보니 중화요리 집에서나 보는 깊고 커다란 둥근 프라이팬이 화려한 불꽃 위에서 춤을 춘다.

춤추는 프라이팬의 가장자리를 미끄지듯 허공으로 치솟아 아슬아슬한 공중회전을 보이는 검은 면발들.
불을 응시하는 심각한 표정과 프라이팬을 쥔 팔뚝에 돋은 굵은 핏줄에서 보여지는 아주머니의 박력.

예상치 못한 광경으로 잠시 넋이 나간 사이에 짜짜로니는 완성이 된 모양이다.
하얀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식탁위에 놓여진 검은 윤기가 흐르는 탐스러운 면발.

“어여 식기 전에 먹어봐요. 내 저 학생하고 기자양반이라니까 특별히 만들어 본거여.
다른 사람들 같으면 어림도 없지. 아유 팔 아파…”
아주머니가 미소띤 얼굴로 시식을 재촉한다.

누가 재촉을 하지 않아도 빨리 시식을 하고 싶다.
이건 벌써 모양과 냄새부터 범상치 않았다.
필자는 서둘러 한 젓가락을 집어 후후 불은 뒤 입에 넣었다.

‘후루룹~ 쩝쩝…’
아!
이거! 맛있다!
이제껏 내가 써왔던 ‘맛있다’ 라는 말을 또다시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게 안타까울 정도로 맛이 있었다.
아까 장씨의 라면도 무척 맛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맛이었다.
입에 넣는 순간 향그러운 볶은 짜장의 풍미가 혀 전체를 감싸고, 겉은 약간 바삭하면서도 속은 쫄깃하게 씹히는 면발 한올한올은 끓는 기름과 불꽃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발랄함이었다.
중국집 짜장면의 모조품으로서의 일개 라면에서 이 정도의 맛을 이끌어 낼 수 있다니…
이건 더 이상 짜장면의 이미테이션이라 할 수 없었다.
새로운 짜장요리의 창조인 것이다.
맛있다. 맛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머릿속엔 한조각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근데. 이런걸 그냥 라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실 이건 반칙이 아닌가? 저 엄청난 화력에다가 중화 프라이팬이라니…
이런건 라면이 아니라, 라면을 재료로 한 어떤 중화요리라고 하는게 옳은 표현일 것 같다.
이런건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끓여 먹을 수 있는 그런 라면의 이미지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그런 라면의 맛도 아니다.
이건 뭔가 정도를 지나친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분명 다른 재료는 쓰이지 않았다.
물과 저 라면 봉지에 담긴 재료가 전부일 뿐. 다른 것은 불과 냄비와 조리실력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분명 라면이다.
요사이 유행인 무슨 퓨전 라면이니 하는 것도 아니다.
그 흔한 계란 하나, 양파 한조각 첨가되지 않았다.
그냥 기본에 충실한 라면일 뿐, 라면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아니. 그런데 애당초 취재의 목적은 짜짜로니와 짜파게티의 맛 비교였다.
짜짜로니가 이 정도라면 짜파게티, 아니 여타 회사의 짜장라면들 역시 이런 조건의 조리사와 도구를 이용하여 훨씬 더 훌륭한 맛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비교란 건 같은 조건에서 해야 함이 옳지 않은가.
이런 곳으로까지 데리고 와서 재주를 부린 짜짜로니를 먹이는 행위는 공평하지 못한 처사 아닌가?

앞에 놓여진 짜짜로니를 맛있게 먹는 중에도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그 때.
“아. 그만 드시고 얘기 좀 하세요.”
귓전에 들리는 말에 그제서야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식탁 건너편에 앉은 장씨와 분식집 아주머니가 미소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하지만 후속글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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