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바리.
화학과 아쎄이들의 악기를 키우는 전통.
화학과 진입하고 나서 선배들 앞에서 맥머리 유기화학 교과서를 손에 쥐고 숨쉴 틈도 없이 악으로 몇백쪽을 소리내어 읽고 암기해내어야 한다.
철모르던 아쎄이 시절 나도 빙 둘러앉은 선배들 앞에서 유기화합물 명명법과 각종 작용기들 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고
엔탈피와 엔트로피, 반응열, 반응물과 생성물의 수율을 공학용 계산기도 없이 계속 계산하느라 손가락이 까져서 계속 아렸다.
실험실 시약장 안에 숨어 에틸렌, 에테르, 니트로글리세린을 비롯하여 이름만 들어도 어지러운 유기화합물의 이름을 외워대던 날이었다.
3회독째 하는데 콧구멍에 약품 냄새가 느껴지면서 그날 먹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위액의 혼합물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산성 용액을 입에 물고 얼굴이 벌게져서 있는데
황(S, 16번째 원소)근출선배님이 호랑이처럼달려와서 내 가슴팍을 걷어차고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시약장이 쓰러지며 나를 둘러싸고 있던 유기화합물 약병들은 모두 땅에 떨어졌다.
나는그날 황근출해병님께 반바보되도록 맞았다.
구타가 끝나고
황근출선배님이 바닥에떨어진 유기화합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악으로 먹어라"
"니가 선택해서 온 화학과다. 악으로 먹어라."
나는 공포에 질려서 무슨 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화학물질들을 주워먹었고
황근출 선배님의 지도 아래 남은 암기량도 전부 마쳤다.
그날 밤에 황근출선배님이 나를 불렀다
니코틴을 주성분으로 하는 종이막대 두개를 물고 불을 붙여 한개비를 건네주며 말했다.
"바닥에 흘린 니 약품을 아무도 대신 치워주지 않는다. 여기는 너희 집이 아니다. 아무도 니 실수를 묵인하고 넘어가주지 않는다. 여기 화학과에서뿐만이 아니다. 사회가 그렇다. 아무도 니가 흘린 똥 대신 치우고 닦아주지 않아. 그래서 무슨일이 있어도 실수하지 않도록 악으로 깡으로 이악물고 사는거고, 그래도 실수를 했다면 니 과오는 니 손으로 되돌려야 돼.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아. 그래서 다시 먹고 외우라 한거다. 외워지지 않을 때는 직접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최고의 암기법이야. 앞으로는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마라."
"명심해라. 자연대생은 자신의 선택이 불러온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황근출 선배님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먹은 화학물질의 환각 작용인지, 황근출 선배님에게 강한 학문적[항문적] 전우애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이 끝나자 마자 황근출 선배님과 강한 공유결합을 시도하였고, 황근출 선배님도 순순히 자신의 최외각 전자를 내어주셨다.
그날 나는 16.9% 에탄올 수용액을 먹지 않고도 취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 그날 클로로포폼에 화학정신을 배웠고 포름알데히드에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