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아저씨2017.07.06 06:14
자고일어나니 많은 분들이 추천 눌러주시고 질문도 해주셨네요 ... 간략하게 설명 해드려야 하는데 제가 잘 설명을 못할것같지만 해드릴께요
먼저 이순신연구소라는 곳이 있고 2012년 4월 24일 이순신 정론이라는 주제의 학술 세미나 순천 향대에서 개최를 했어요 그 강연은 이순신제독에 대한 것들을 설명하고 실제적인 부분이랑 다른걸
알려주는 강연 이었고요..
이순신제독은 역사적인 인물이고 그 제독에 대한
이설을 정론으로 바로 잡자고 해서 학계의 관심 주목
모두 받고있었어요 이순신제독이 참저놘 해전횟수
출신 배경등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로 알고있는 이야기들운 사실과 다른점이 확실히 있고 어느정도 미화 된 부분이 있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합니다
순천향대학총장 손풍삼님.이순신연구소 소장 임원빈님이 충무교육원 강당에서 임진왜란 발발 7주갑을 맞아 '이순신 정론'이라는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한 분들이고 그 학술 세미나는 충남 아산시 최고 축제인 '성웅 이순신 축제'에 앞전에 진행돼 더 많은 관심을 받았고 사람도 몰렸습니다
그날 세미나에서는 해군리더십센터 제장명 교수와 해군사관학교 이민웅 교수, 이순신연구소 임원빈 소장, 정진술 문화재 전문위원, 연기교육청 홍순승 장학관 등이 발제자로 나서 강연을 했고 그 내용중엔
제장명 교수는 '해전횟수.면사첩.백의종군'이라는 주제로 발표했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을 거뒀다는 주장은 실체가 없이 대략적인 셈으로 표현한 횟수라고 지적을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2004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방영을 전후해 '23전 23승'이라는 문구가 각종 매체에 이순신의 전적으로 사용됐지만 이러한 주장은 구체적인 해전명칭을 제시하지 않고 대략적인 횟수만 표기했기 때문에 어떤 해전들로 구성돼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임진왜란의 대표해전은 총 21회로 이중 이순신은 총 17회 대표해전에 참가해 전승했고 세부해전 49회 중 이순신은 45회 참가해 전승(총 62전승)을 거뒀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해전을 제외한
모든 해전이지만 드라마 상에서 드라마에 맞춰서 짜여진 23승이 마치 전부인것처럼 일파만파 퍼졌고
학교에 재직중인 대부분의 교사들도 모든 분야에 정통할순 없기에 총 23승이라고 생각들 하게됩니다
그렇지만 알려지지않은 해전까지 총 62전 62승이고
실제 이순신제독은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관심 없고 칼싸움 활쏘기등을 좋아했고 이런 놀이를 할때마다 꼭 대장노릇을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고 사고도 많이 쳤다고 하지만 이 부분이 어느정도 많이 미화되었고
성인이 되서도 별다른 직업없이 집에서 생활을 하며 지냈고 번번히 시험에도 떨어져서 좌절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런 이순신 제독이 시험을 보고 성웅이 된 이유는 번번히 일어나는 왜의 침략때문이고 그 이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수군들에게는 엄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더 엄격하고 전시상황에서는 수군들이 주먹밥이나 이런 밥을 먹을때 이순신제독은 감자몇알 정도로 끼니를 때우고 제대로된 식사는 수군 한명이라도 더 먹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 전투마다 죽음을 각오하는 임전무퇴 필사즉생 의 각오로 매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만 그 승리에는 매일 밤늦게까지 바다의상황이나 날씨 지형 모든부분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왜에 비해 함선이 많지 않고 함선 기술이 뒤쳐져 있어서 매일 더 단단한 화살이 날아오고 포가 와도 방어할수 있고 왜군이 수군 함선으로 침입은 불가능하되 왜선보다 더 빠르고 더 단단하고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배를 만들자해서 만든게 최초의 판옥선이고 그후에 거북선이라는 이순신이 만든배 라고 질문을 하면 유치원생들도 거북섬이라 대답하는 조선수군 최신예 함선을 제작 하게 됩니다 판옥선에서 거북선으로 제작 실험 실패 제작 실험 실패를 반복해서 만든 거북선은 ..
위에는 판자를 덮고 그 위에 십자로 좁은 길을 내어 거북선에 탑승한 조선수군만 다닐 수 있게 만들고 그 외에 나머지 부분은 칼과 송곳을 총총히 꽂아서 사방으로 왜군이 기어올라 오지못하게 만들고 앞에는 용의 머리를 달았고 그 입에는 화포구를 만들어 대포를 장착하고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달았고 그 꼬리 역시 화포구를 만들고 대포를 장착하니 그 모양이 마치 거북의 모양과 같아서 이름을 거북선 다른 이름으로는 귀선이라 지었어요 또 적에게 위압감을주며 배를 숨길수 있도록 용머리에서 유황을 태워 연기를 내었다는 기록은 이순신 제독님의 난중일기에서 확인을 할수 있고 거북선 그림들중 머리부분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 난중일기를 토대로 그린 그림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좌우로 각 6개의 화포로 전방향 함포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 거북선의 전후좌우 화포배치는
지금 현 2017년 대한민국 해군뿐만 아니라 전세계 해군의 모든 함정에 기반이 되는 화포 배치가 됩니다
소형함인 참수리부터 대형함인 kdx 이지스 급 배들도 전후좌우로 함포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사람들도 포 옆에서 사격이 가능하게 철판을 보호구로 덧대어 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었죠.. 지금 기술의 시초는 거북선이고 동시대 전세계에서 그당시 거북선을 상대로 이길수 기술을 가진 배는 없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거북선은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졌고 이전까지 왜선 1대는 혼자서 조선의 판옥선 5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함선 이었지만 거북선을 만든후엔 거북선2대 판옥선26척으로 왜선 13대 모두 격파해서 침몰당하고 왜군 2600명 전원 사망의 기록을 세웁니다 우리 조선의 피해는 전쟁 선봉에서 싸운 이순신장군님의부상 거북선 병기류 제작에 참여한 전라좌수영 소속 유군장 나대영 단 2명의 부상으로 끝내 버렸음.. 실제로 있었던 전쟁보다 과소평가가 많은 이순신 제독이고 항상 전쟁에 최악의수를 생각하고 사망자 부상자들이 기록보다 많을거라고 책정하고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적게 표기되 있는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건 여기까지네요.... 말의 앞뒤가 안맞아도 이해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