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투더키스바리여관바리12.11.06 11:05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에서 태어나 1955년 미국에서 타계했다. 칠십 년 넘게 지속 된 그의 삶은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하자면 매우 평탄하고 평범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 인생의 위기라면 학교 다닐 때 라틴어, 지리, 역사 과목 에서는 낙제를 받았다는 것과 대학 입학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 스물네 살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 쓰고 결혼했다가 결국 이혼했다는 것이 전부이 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노벨상으로 받은 상 금 모두를 위자료로 털렸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인도 정복에 나서지도 않 았고 나폴레옹처럼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선 포하지도 않았다. 브르노처럼 지동설을 주장하 다가 화형 당하지도 않았고, 다윈처럼 생명의 진 화과정을 살피기 위해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오 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지도 않았다. 그의 중요 한 모험들은 실제 세계가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서 이루어졌다. 그는 사고 실험을 통해, 상대성 이론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통 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바꾸어놓았다. 그 결과 그는 지난 20세기 동안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절대적인 진리'와 '인식의 한계'를 밝힌 상대성 이론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멀고 먼 나라에 임금님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심심했 던지, 신하들에게 코끼리와 눈먼 장님들을 데리 고 오라고 시켰다. 임금님은 장님들에게 코끼리 를 만져보게 한 뒤, 물었다.
실제세계가 아닌 머리속에서 이뤄진 사고 실험을 통해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대들이 만져본 코끼리는 무엇과 비슷한가?” 귀를 만져 본 장님은 코끼리가 부채와 비슷하다 고 말했다. 이빨을 만져본 장님은 무와 비슷하다 고 했고, 다리를 만져본 장님은 절구와 비슷하다 고 했다. 등을 만져본 장님은 침상과 같다 했고, 배를 만져본 장님은 큰 항아리와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은 새끼줄과 같 다고 했다. 서로의 말이 다르자, 그들은 자기 주 장에 옳다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 장님들이 관찰 한 것은 모두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 관찰한 코끼리의 모습은 그들이 서 있던 위치 에 따라 달랐으며, 진정한 코끼리의 모습과도 사 뭇 멀었다.
지난 20세기 우리가 부딪힌 문제도 이와 비슷했 다. 전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은 존재한 다. 그러나 우리가 관찰한 우주의 모습은 우리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진리는 보편적이고 절대 적이지만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의 인식에는 한 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관찰한 것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지식의 상대성과 인식의 불확실성이 20세기 지성사의 가장 큰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의 근원에는 아인 슈타인이 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인, 1905 년 그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그리고 1 916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상 대성 이론을 통해서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그것 을 관찰하는 우리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을 보여주었다. 자 이제 상대성 이론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아르키메데스 지점'과 상반된 갈릴레오의 '상대 성 이론'
기원전 2세기경에 살았던 아르키메데스는 지렛 대의 원리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지구 밖의 한 지점과 긴 지렛대를 달라, 그럼 나 는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 이 말은 아르키메데 스가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호언장담이었지만, 꽤나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 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그 후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가상의 한 점을 ‘아르키메데스 지점’이라 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은 본래의 뜻과 약간 달라져, 관찰자가 객관적으로 관찰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아 르키메데스 지점에 서면,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 이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어떤 착오 나 오차 없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키메데스 지점에서 관 찰한 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관찰한 것은 항상 옳으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 다.
그런데 16세기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는 이 우주 어디에도 아르키메데스 지점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은 운동하기 때문에 완전히 멈추어진 지점을 찾 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관찰자의 관찰 결 과는 그가 운동하는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기차가 일정한 속도로 기차역 안으로 들어 온다고 하자. 기차 역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 신은 멈추어 있는데 기차가 다가오고 있다고 관 찰할 것이다. 그러나 기차 안의 사람은 자신은 멈추어 있는데 기차역이 다가온다고 관찰할 것 이다. 관찰자가 기차 역 위에 있느냐 기차 안에 있느냐에 따라 그들의 관찰 결과는 달라진다.
그러나 어떤 물체가 있다면, 기차역에서 관찰하 는 그 물체의 가속도나, 기차 안에서 관찰하는 그 물체의 가속도는 동일하다. 왜냐하면 가속도는 시간당 속도의 변화율이기 때문에 속도 차체에 는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물체 의 질량이 어디에서 측정하나 동일하다고 ‘가정’ 하면, 기차역 위에서나 기차 안에서나 F=ma (힘 =질량x가속도)라는 역학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 된다. 다시 말해 서로 등속도로 운동하는 관찰자 에게는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된다. 이것을 갈 릴레오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갈릴레오의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바 탕이 되는 첫 번째 가설이다.
특수상대성 이론,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시간과 거리가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성 이론은 다음 두 가지 가설을 출발점으로 한다.
1 갈릴레오의 상대성 이론: 모든 운동은 상대적 이며, 등속 운동을 하는 모든 관찰자에게는 같은 물리 법칙을 적용된다. 2 광속 불변의 법칙: 빛의 속도는 관찰자가 정지 해있거나 운동 상태에 있거나, 또 어떤 방향에 있 거나 상관없이 일정하다.
2번 광속 불변의 법칙은 우리 상식을 깨는 관측 결과이다. 일반적인 상황과 비교해보면, 이 가설 이 얼마나 이상한지 금세 알 수 있다. 기차가 20 m/s라는 속도로 기차역에 들어오고 있다고 하 자. 그런데 기차 안에서 있던 한 사람이 기차역 을 향해 1m/s라는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역 위 에서 관찰한 그의 속도는 얼마일까? 정답은 기차 와 그가 걷는 속도를 더한 21 m/s이다. 자 이제 다른 문제를 내보자. 기차가 정차했다면 이 기차 의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빛의 속도는 얼마일 까? 정답은 빛의 속도인, 약 300,000,000m/s이 다(만일 기차 주변이 진공이라면, 정확히 300,00 0,000m/s이다). 그런데 이 기차가 20 m/sec 속 도로 기차역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고 하자. 그럼 이때 기차역에서 관찰한 헤드라이트의 빛의 속 도는 얼마일까?
우리는 쉽게 빛의 속도에 기차의 속도를 더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답은 300,000,020 m/s가 아닌 300,000,000m/s다. 움직이는 기차 에서 나온 빛의 속도는 멈추어진 기차에서 나오 는 빛의 속도와 똑 같다.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 인가! 알다시피 속도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것 이다. 빛의 속도가 일정한 상수가 되려면 시간과 거리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변수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가 불변하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했 던 시간과 거리는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달라진 다. 이것이 바로 특수상대성 이론이다. 특수상대 성 이론을 요약하면 빠른 속도로 등속운동을 하 면 시간은 느려지고 거리는 짧아지고 질량은 늘 어난다. 갈릴레오의 ‘가정’과는 다른 결과이다.
1930년경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 이론,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11년 만에 아인슈 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특수 상대 성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은 등속 운동계 안에서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제 범위를 넓혀, 가속 운동계 안에서도 동일한 물리적 법칙 적용된다 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렇게 그는 관찰 자에 따라 관찰결과는 달라져도, 우주는 동일한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인슈타인은 한 가지 마술을 부 리는데, 그것은 가속 운동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 이 같다는 것이다. 동시에 중력의 원천이 되는 중력 질량과 관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관성 질량 도 같은 것이 된다. 이것을 등가의 원리라고 한 다. 등가의 원리가 성립하려면 중력이 시간과 공 간을 휘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휜 시공간에서 는 그 시공간을 지나는 빛도 휘게 된다.
모든 관찰결과는 상대적이고 개개인의 관찰능력 에 한계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것은 우주 의 모든 것은 보편적인 법칙에 지배를 받지만, 관 찰자의 입장에서 따라 관찰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의 입장에 처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중력장) 에 따라, 서로 다른 관찰 결과를 말한다. 그리고 서로 자기가 관찰한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누구의 관찰 결과도 옳다고 할 수 없고 누구의 관찰 결과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의 관찰 결과는 그가 처한 입장(중력장)에서는 옳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중력장)에서는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관찰결과)은 상대적이고 우리의 인식(관찰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문득 필자의 스승인 켄튤 나왕 룬드룹(Kentrul N gawang Lhundrup)이 한 말이 생각난다. 사십 년 가깝게 수행하신 이 티베트 승려는 이렇게 말 했다. “다르마(보편적 법칙, 혹은 절대적인 진리) 는 누구의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모든 존재들은 다르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요. 아무리 못 나고 비루해 보이는 사람들도 그러한 정보를 가 지고 있습니다. 다르마에 대해 알려면, 우리는 그 들이 가져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들은 우리의 스승이지요.” 만약 코끼리를 만진 장님들이 싸우지 않고 서로 둘러 앉아 토론을 시작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랬다면 그들은 퍼즐을 맞추듯, 그들이 관찰한 정 보들을 모아 전체의 코끼리 모습을 그려내지 않 았을까? 확실히 진리는 너의 것도 나의 것도 아 니다. 그러나 어쩌면 진리는 우리 모두의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