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워킹2022.07.18 11:11
2006년 말 푸르덴셜생명 광고에 나왔던 전설로 남을 주옥같은 대사이다. 홍보 문구는 "10억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해 힘들었던 가족이 10억의 보험금을 받아 다시 일어난다는 전개이다.
이는 실제 사연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광고로, 사망자는 강원도 동해시에 거주하던 소아과 의사 유모 씨였고, 1999년 11월 23일 오후에 푸르덴셜의 종신보험에 가입하여 203만 원을 보험료로 납부했는데[1] 18시간 후, 즉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오전 8시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게 화제가 된 이유는 초회 보험료만 내고 사망, 심지어 보험 청약서가 푸르덴셜 본사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한 데다[2], 푸르덴셜 입장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보험금 지급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험 계약의 효력은 제1회 보험료를 받은 때부터 보장을 시작하므로[3], 이 사건을 인정하면 10억 6백만 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해야 하고, 부인한다면 해당 사망자의 유족과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결국 푸르덴셜생명은 내부 검토 끝에 고지의무 위반이나 면책기간, 보험자(보험사)의 가입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등의 사유를 통해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기보다는 유족한테 그냥 보험금 10억 원을 지급하였다. 이 돈을 지급하기 위해서 한국 푸르덴셜생명은 미국 본사 CEO에게까지 보고했고, 미국 본사에서 사안을 검토한 이후 "마케팅용으로 쓸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번만큼은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한다.
푸르덴셜은 몇 년 후 이 사건을 홍보에 활용하자는 기획[4]으로 광고를 만들었는데...
10억을 받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는 거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이것 또한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라이프플래너였던 이 사람,
이젠 우리 가족의 라이프플래너입니다.
변하지 않는 푸른 약속 푸르덴셜생명
이 광고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의도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즉 의도는 좋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데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애초부터 그 의도에 문제가 있다. 원래 사연대로라면 1회 납부 후 지급이라는 상황에서 굳이 법적 공방으로 끌고 가지 않고 깔끔히 지급한, 회사가 통크게 올바른 행동을 한 거라 자부심을 가질 만하기도 하지만, 광고상으로 보면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라 "그래서 어쩌라고?"란 생각이 들게 한다.
광고를 기획한 푸르덴셜생명 측에서는 '우리 회사는 딱 한 번만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에게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생색내면서 자랑하고 싶었겠지만, 그것은 애초에 광고를 통해 홍보할 사안이 아니다. 보험금 지급은 보험사의 제1업무이기 때문. 보험회사가 군말없이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리지만, 오히려 "사실 회사는 돈을 주기 싫었다"[5]라는, 기업 입장에서 당연하긴 하지만 밖으로 드러내서 좋을 것 없는 의중을 그대로 보여주고 만다. 고인이 보험 가입 바로 다음 날, 단 1회 보험금 납부 후에 사망했다는 내용을 집어넣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광고 내에선 이 부분을 전혀 알 수가 없기에 더더욱 의심을 사게 만든다.
광고가 시작하자마자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부분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배경음악을 제외하면 영상 어디에서도 유감을 나타내는 부분을 찾을 수 없고, 생명보험회사가 대뜸 거액을 지급했다는 것으로 광고를 시작한다. 영상의 의도는 보험을 통해 '아버지가 없이도 생활에 문제가 없는 가족'을 그려내는 것이였을 거고 실제로도 그런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10억이 아니라 무한정 돈을 준다 한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없는데 잠시 동안이라도 가족이 아무 문제가 없을 리가 있을까?
보험사는 아버지들에게 어필하여 '당신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광고는 '아버지의 목숨이 10억으로 치환되었다'라는 불쾌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실제로 영상을 본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가족 간의 사랑, 그리고 부성애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다. 즉, 광고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그러한 점이 아버지의 사랑을 가치절하시키며, 광고가 가식이라는 느낌을 주게 된 것.
사실 죽어서도 빈 자리를 느끼지 않게끔 대비한다는 콘셉트의 생명보험 광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다. 그러나 이 광고처럼 금액을 확실하게 명시하지는 않는 편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에도 우리 가족은 무너지지 않고 회복할 수 있었다'에만 초점을 두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논란은 되지는 않았겠지만 10억이라는 자세한 금액을 표현해 버렸으며 지나치게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문제가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