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229896No.110512018.04.21 17:52

잠 못 드는 내 등을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출근하는 길에 맛난 걸 사먹으라고
꼬깃한 천원짜리를 쥐어줬으면 좋겠다.
어두울 때 큰 길까지 후레쉬를 들고 마중을 나와 줬으면 좋겠다.
슈퍼에 가서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줬으면 좋겠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데려가줬으면 좋겠다.
무와 파가 잔뜩 든 생선조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밤에 화장실을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
아궁이 잿속에 고구마를 구워줬으면 좋겠다.
언덕 너머 순대공장에 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찐 순대를 사줬으면 좋겠다.

못 알아봐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으니, ‘니가 ♡♡ 맞나?’ 라고 내 손을 잡고 울먹여주면 좋겠다. 꿈에라도 나와 주면 좋겠다.

나는 아직 혼자 살기엔 너무 어린데, 할머니가 없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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