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다. 그 당시의 기억과 냄새와 느
낌은 아마 평생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4년 전 쯤이었을거다. 아버지가 아팠던 시기가
난 그저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러 갈려고
밥을 먹고 있을때였다. 우리집은 다른집보다
전화를 자주하지 않는 집안인데, 그날따라
오지않는 전화가 두통 연속으로 나에게 걸려왔
다. 첫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두번째 전화는
어쩔 수 없이 받게됬다. 누나가 급하니 빨리
누나 병원으로 오라했다. 그 당시만 해도 그
울먹임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병원을 도착하고, 오라는 곳으로 갔더니 엄마,
아빠, 누나 셋이서 앉아있었다. 나는 왜 앉아있
던곳이 암센터였는지 왜 그 순간에 바로 알아
채지못했는지 그 당시의 나에게 원망한다.
그러곤 집으로 왔다. 거실에 넷이 모여앉아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때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간암 말기란다" 라고 무덤덤히 말을 했다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싶지 않았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 울고있다 눈물이
나질 않았다 슬프지 않던건 아니다 그냥 눈물
이 나지않았다
신에 대한 원망을 그 때 했던거 같다
6년을 교회 학교를 다녔던 나는 어쩔수 없이
신앙에 의존을 했던 기억도 있다
꽤 오랜 시간이라면 오랜 시간인 6년을
그렇게 살았지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
신을 원망했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 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듣고 바로 뛰쳐나왔다
가족들에게 내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도 있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보고 싶던 것
도 있다. 학생 이었던 나는 집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내가 도움이 될 길은 그저 아버지 곁에 있어주
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내 19살부터의 기억은 모두
아버지에게 꽂혀있었다.
수능 마치고 모든 수험생들이 놀 시기에
나는 병원에 있었다
20살이 되서 동창들 친구들 모여 술 마실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대학교를 들어가고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에
아버지는 홀로 먼길을 떠나셨다
학교에 있을때 연락이왔다 임종이 다가왔다고
마치고 병원으로 바로 달려간 나는 교수님들
친구들 에게 다 연락을 하며 상황을 전했다
그렇게 새벽이 되고 나는 아버지의 역할을
내가 맡았다
아버지가 죽고난 후 부터 나는 눈물이 나지않
는다. 아버지의 유언이 누나와 엄마 앞에서는
울지말라고, 니가 울면 누나와 엄마는 어떻게
되겠냐고, 20살 어린나이였지만 그 말을
들었을때부터 나는 어른이 되었다
심장이 멈췄을때도, 화장 하기위해서 준비를
할때도, 시신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을때도
태우고 남은 뼈가 내 품속에 들어왔을때도
나는 울지않았다.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20살 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까지
가족들 앞에서 운적은 없다.
힘들었다. 누나는 남자친구에게
엄마는 나에게 기대어 각자의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있었다
기댈곳이 없었다. 기대고 싶지 않았다.
겉으론 괜찮은 척, 밝은 척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속으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
으니 내 마음과 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곪아들어갔다.
1년동안 나는 제정신인 삶을 살고있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덤덤해져 갈때쯤
내 마음속엔 주기적으로 우기가 찾아온다.
그때의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 있을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 그리고 슬픔은
모두 나에게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 내 마음속
에 한번씩 찾아오는 우기였다
비 온뒤 땅이 굳듯이,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것
일줄 알았었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내 친구들도 모르게
정신과 상담을 한번씩 받았던 것도, 그때
부터였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우기는 찾아온다.
비 맞으며 힘들게 서있는 내 마음을 보며
힘들어했던 3년전의 나는 이젠 없다
그런 모습을 봐도 덤덤하다.
앞으로의 내 삶에 받았던 상처들이
좋은 영향만 끼쳤으면 좋겠다
두서없이 적었다
이 생각들이 더 잊혀지기전에 글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쓴다
2019년 8월 18일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있다
이 글을 보고있는 미래의 나와 다른 사람에게
당부를 하나 할까 한다
우기가 찾아오면 그대로 놔뒀으면 한다
비온 뒤 땅이 굳듯이, 그또한 모두 지나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