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에 남편과 다퉜어요..

993405No.400602022.04.23 22:59

남편이 낮에 볼일을 보고 절 위해 먼 길을 돌아 한아름 안길만한 꽃다발을 사오고 저녁으로 평소에는 못 갈 비싼 스시집을 예약해서 같이 웃으며 저녁을 먹으러 갔어요. 전 한창 다이어트 중이라 제로콜라를 마셨고, 남편은 사케 작은 병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술맛이 좋았던지 홀짝홀짝 계속 마시다가 세 병까지 마셨더랬죠. 두 병까지만 마셔라 작게 권유할 땐 말 안듣고 기어코 한 병 더 마시니까 얼굴이 빨개져서 국도 좀 쏟고 술잔도 엎지르고 하니 실수할까봐 긴장하다가 코스 끝나고 얼른 결제하고 나왔어요.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밥먹고 대화하며 산책 느긋하게 하고 싶다고 얘기했던터라 공원으로 향하는데 계속 비틀거리고 붙들고 기대고 취한티를 내더라구요. 산책이 안되겠다 싶어 그냥 집에 가자고 하는데 남편이 괜찮다고 그냥 가자더라구요. 그런데 뭐 공원가서도 비틀거리고 호수에 들어갔다 나오겠다는 둥 작은 주사들을 계속 부리길래 기분도 별로고 제가 힘들어서 그냥 가자고 좀 정색을 했어요. 그랬더니 길에서 계속 저한테 왜그러냐고, 내가 좀 비틀거리고 취한티 낸게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이정도도 이해를 못해주냐며 계속 화를 내더라구요. 보고 있는데 결혼기념일에 남편 혼자 취해서 길바닥에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괜히 서러움이 올라와서 눈물을 보이니까 더 승질을 내더라구요. 취기 있는 사람 붙들고 잔소리 하고 싶지도 않아 입다물고 집에 오는데 어찌나 속상하던지..
비싼 꽃을 준비하고 비싼 밥을 먹고 그런걸 바랐던 게 아니라 같이 오붓하게 저녁먹고 산책하며 대화하고 근처에 인생네컷같은 사진 찍는 곳 많으니 그런데 가서 추억이나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뭐 돈은 돈대로 쓰고 이렇게 기념일을 끝냈네요. 집에 오자마자 손씻고 잠든 남편 보고 하루 끝이 씁쓸해서 끄적여 봐요. 취한 남편 좀 못받아준게 잘못한 일인지 기념일이고 뭐고 제가 너무 고상한걸 바란건가 싶고 울적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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