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기구한 사연없는 무덤 없다지만, 저만큼 복잡한 사연도 찾기 힘들 것 같네요.
이건 왜 그렇게 됐어? 라는 질문에 하나하나 풀어가며 말하기엔 10년전 일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야하고, 그러자니 너무 지루해 지기에 조금만 각색해서 설명해볼께요.
저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근데 꼴에 바텐더에 꽂혀서 내성적인 성격을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꾸겠다고 영업직에 들어가 성격을 힘들게 바꿧죠.
그리고는 바텐더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 절 이렇게 만든 한 친구를 만났어요. 그냥 친한 직장동료로써 잡담도 하고 퇴근하고 술도 마시면서 일을했지요.
각자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한 후 저는 요리사쪽으로 진로를 변경했고, 친구는 계속 바텐더의 길을 걸었답니다.
2년쯤 지났을까, 가끔 안부인사만 하던 사이였는데 친구가 러브콜을 날렸어요.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데 절 요리사로 고용하고 싶다고 했어요.
누군가 날 찾았다는 기쁨에 일을 관두고 친구의 밑으로(운영느낌은 동업자 비스무리 했지만) 들어갔죠.
두어달 월급을 제대로 받았을까, 월급이 계속 밀리고 한달을 살아갈 필수 생활비만 겨우 받아갈 정도로 사업은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친구는 밀린 월급을 대출과 사업장의 비싼 양주 몇병으로 상환했고 서로 각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전 다시 요리사로, 친구는 바텐더로.
또 몇년이 지나자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어요. 이번엔 자기가 일을하는 곳에 요리사가 부족하데요. 지금생각하면 저도 참 멍청했죠. 안그래도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바로 친구와 일을 하게 됐어요.
친구는 그 가게의 매니저가 돼 있었고, 제가 어떤사람인지 전해들은 직원들은 막내직원으로 들어 온 저를 부매니저급으로 대해줬어요. 당연히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을 맺었는지 빠르게 주방 헤드를 달았습니다. 조그마한 개인 업장이니 가능한 일이었죠.
서로 계속해서 공동창업을 이야기했던 저의 설득으로 친구는 매니저를 관두고 주방으로 직책을 옮겼습니다. 여기까진 앞날이 밝아보였어요.
제가 성격이 지랄맞던 홀 직원의 태도를 지적한 날이었어요. 그 직원은 개쌍욕을 하며 당일날 퇴사를 했습니다. 저는 도를 넘는 언행을 한 그 직원을 고소했어요. 합의금을 뜯든, 공개사과를 받든 아무튼 제가 무조건 이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세상이 제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걸 다시한번 알게됐어요. 사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직원이 평소 매출과 지출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굴던 저를 나쁜사람으로 매도한것이에요.
사장이 내뱉은 '매출은 니가 신경쓸게 아니야'가 제 어이를 앗아갔답니다.
어느 업장이나 나쁜역할 하나가 있어야 잘 굴러간다는 지론이 있었고, 제가 총대를 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더 충격인건 그 친구의 태도였어요. 완전히 극수동적인 스텐스로 바뀌어서는 제 행동을 이해 못하겠다고 발언을 하고 저를 완전 범인 취급하며 완벽하게 등을 돌린 것이죠. 피해자는 전데 이상하죠? 이게 사내정치, 줄타기 그런건가 싶어요.
세상전부 나와 등을 돌려도 집마저 가까운 그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위로받으며 심리적 재정비를 할 거라는 저의 얇은 기대는 완벽하게 날라갔답니다.
이제는 친구였던. 이 되버린 이 사람은 완벽하게 절 무시하고 있답니다. 술한잔 하자는 말도 무조건 거절하고, 단순한 잡담도 그저 하. 하고는 넘겨요.
그래도 언젠가 '난 이렇게 하는데 넌 왜 이딴식으로 굴었어?' 라는 말이라도 하기 위해 전 계속 친근한척 말을 걸고 있지요. 말하고 보니 상당히 저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지네요.
물론 대놓고 이유를 캐묻고, 서로 풀게 있다면 풀 수도 있겠죠. 근데 그렇게까지 하고싶진 않더라구요. 그동안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끊어버린 사람한테 제가 뭐가 아쉬워서 매달려야 할까요? 상대방도 제가 아쉬울거 하나 없어보이니 저도 질척질척하게 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아, 고소는 어찌됐냐구요? 사장의 협박으로 취하했습니다ㅋㅋ 웃기죠? 제 연봉을 미끼로 시끄럽게 일 키우지 말라더군요. 어쩌겠어요. 전 결국 돈의 노예인걸요.
아직 전 여기서 일하고 있답니다. 사실상 없는사람 취급 비슷하긴 한데, 그건 또 그거대로 재미있는 이유가 있죠.
이 모든사실을 전해들은 제 불알이 있어요. 햇수로 알고 지낸지 30년 조금 안되는 이놈은 글로 먹고사는 전업작가입니다.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준 것중에 하나가 이거에요.
자기가 글을 봐주고 피드백을 해줄테니 일단 부업으로 시작해서 각이 잡히면 -즉 제가 지금받는 월급정도 수입이 찍히면- 저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라는 것이었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지금까지 제 성격을 뒤집어 엎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것을 롤백하고, 내성적이고 혼자 공상을 즐기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느꼈다고 한다면 오바하는걸까요?
하지만 전 제 불알 -이제는 제 선생님이 되버린- 을 따르기로 했답니다.
이제까지 해온게 있으니 창업이라도 한번 해볼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빅스텝이니 자이언트 스텝이니 금리가 미쳐 날뛰고 있네요. 상황이 참 절묘하다고 해야할지, 얄굳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그러다보니 일9시간 주5일 칼퇴근, 없는사람 취급받는 단순노동(이 될만큼 숙련되버린)이라는 지금 이곳은 시놉을 짜기위한 최고의 직장이 돼 버렸어요.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전 그저 예스맨이 돼서 아무렇지 않은척, 겉돌지 않는 척 연기만 하면서 일하면 되고, 머리속으론 내 소설을 구상하면 된답니다.
게임도 좋아하고, 혼술도 좋아하고, 글도 써야하는 요즘 잠을 줄여가며 살고 있는데 하루하루가 짧고 아쉽기만 하네요. 좀 더 어렸으면 좋으련만.
사실 이글도 일하면서 머릿속으로 중얼거린걸 정리한것 뿐이에요.
제가 바라는게 있다면 이 연기조차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기전에 글이 자리잡고 벌이가 돼서 평생 머릿속 구상이나 파먹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네요.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실망하는건 더이상 지쳤거든요.
(글로는 옮기지 않은 두가지 사건이 더 있긴 하네요.)
이제는 최소 10년이상 알고지내는 몇 안남은 친구들과 가끔 술한잔 하는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인싸 비슷한 흉내를 내는 삶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람 고쳐서 쓰는거 아니라고, 적막을 즐기는 제 본모습대로 사는게 더 좋을 것 같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언젠가 소설을 연재하게 되면 그때는 이를 악물고 쓴 제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