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집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전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에게 공부 강요, 진로 강요를 무지막지하게 받고 자랐습니다. 이게 통했으면 모르겠으나 아버지가 틈날때마다 불러앉혀서 3시간 5시간씩 한말 또하고 반복에 다른 의견이나 진로를 이야기하면 멍청하다 아직 공부를 덜했다 물정 모른다고 욕쳐먹는 등 거의 학대였죠.
더군다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건 아버지였습니다. 저 초1때부터 모든일 관두고 친구들 돈까지 끌어들여서 주식하다 망해서 파산신청 후 수급자 돈 타먹어야한다며 손하나 까딱 안하고 하루종일 저에게 저런 말 하고, 내용은 요새 공군조종사가 멋있으니 그걸 해봐라, 의사가 좋다니 의사를 해라 수준이었습니다. 그런 쓸모없는 내용을 몇시간씩 듣고있으니 오히려 공부가 방해가 됐었어요.
어머니가 말리기라도 하면 니는 끼어들지 마라 니가 나를 무시해서 얘가 성적이 더 안오른다며 부부싸움으로 번졌고, 어머니가 저희를 위해서 말해주다가 그런거니 나중엔 어머니를 위해서 그냥 체념하고 네 네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20대 초입에 가출같은 독립을 해서 오래 사귄 착하고 좋은 남친과 결혼도 하고(혼인신고만 하고 삽니다) 애도 낳고 취직도 해서 지금 저는 개발자로 잘 먹고 잘 삽니다.
독립한 초반에는 벌레 취급을 하다가 취업하고 잘 되니 갑자기 '자기가 말해준 것 때문에 잘된 자식'으로 평가가 격상되어 오히려 뿌듯해하고 좋아라 하시고... 전 그게 참 아니꼽긴 하지만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이제까지 연은 안끊고 연락하며 살았는데
그와중에도 남편과 자식을 남 취급하고 (그러면서 돈 드리는것, 가끔 우리집 오실때 남편이 해드리는 대접 잘만 받아먹더군요.)이번에는 원래 저 혼자 내려가는 거였는데 손주도 같이 내려오라고 하셔서 애만 데리고 갔습니다.
첫날은 용돈도 드리고 양주도 사가서 그런지 나름 화기애애하게 밥먹고 반주도 하고 좋은 분위기였는데 그 다음날에 애한테 예전 저한테 했던 잔소리를 또 하기 시작했어요. 몇시간이고 옆에 앉히고 진로가 뭐냐, 그 진로는 안된다. 이건 어떠냐. 이게 좋다. 이거 말고 딴거 선택하면 바보가 된다. 하다가
저희 어머니가 또 그만 얘기하고 밥 먹자고 끊으려 하니 그때부터 어머니한테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ㅎㅎ 그러더니 발까지 구르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해요.
그와중에 애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오더니 차마 저한테 외할아버지 욕은 못하고 '아이구 참.. 어머니가 왜 외할아버지 말씀이 길다고 하셨는지 알겠어요..'
이러는거 보는데 이걸 내 아이한테까지 대물림 한단 생각이 들어서 그 길로 짐 다시 챙겨서 간다고 나와버렸습니다. 원래 오늘 오는 거였는데 그냥 어제 아침에 나왔어요. 나올때 저희 엄마가 우셨는데 아이가 생기니 아무래도 엄마 우는것보다 애 한숨이 더 와닿더라구요...
일찍 집 오니 남편이 안아주고 고생했다고 보고싶었다 하고
고모(저희 아버지 성격의 1대 피해자이심)도 연락오셔서 잘했다 하시고
무엇보다 애가 의젓하게 괜찮다 하면서 방학같은 추석이라고 좋아하니 차라리 행복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