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히려 최근부터 운명을 부정하기 시작했어요

6월중순 출근길 지하철에서 너무너무 예쁜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흰블검치의 누가봐도 면접 복장을 하고 있던 그녀는 너무나 귀여웠고 뭔가 홀린듯이 말을 걸게 되었어요.

대화하다가 안 사실인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오늘 보는 최종 면접은 제 친구가 다니고 있는 회사였고 저는 그녀에게 꼭합격하셔서 출근길에 또 다시 뵈었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그 후로 친구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최종결과 발표가 언제인지 어느팀으로 배치되는지 정말 일주일에 서너번씩 물어봤었습니다. 인고의 시간 끝에 결과 발표가 났지만 그녀는 그 회사에 합격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염치불구 그 면접날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잠시 일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 돌이켜보고 후회해봐야 무얼하냐는 마음으로 잊고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여느 때 처럼 출근하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저는 신기하게도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쏟아져 나오는 수 많은 인파 속에서 제 눈 앞에 낯익은 여자분은 분명 제가 한 달 전에 뵈었던 그 분 이셨어요. 그리고 그 분도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방금 본 사람도 잘 기억못하는 저 이지만 분명 그분이었어요.

역을 올라오는 잠시 동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었습니다. 이전에 면접 봤던 회사는 떨어졌지만 근처에 다른 회사에 합격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출구는 다른 방향인 듯 하여 서로 갈 길을 달리 하게 된 순간 저는 용기내어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것 처럼 보였지만 이내 연락처를 알려주었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ㅎㅎ 지난 번 그녀가 면접 보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제 친구에게도 이 일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참 신기한 인연이라며 잘됐다고 하더라구요.

그 다음날 출근길에 카톡을 하다보니 그 날도 같은 지하철 안에 있었고 역시 어제 만났던 그 곳에서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며칠 간 그녀와 연락을 주고 받았고 어차피 직장이 근처이기에 편하게 저녁 한 끼 하자며 저녁 약속도 잡았습니다. 그녀는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과제가 많았는지 약속 날짜는 조금 멀게 잡게 된 것 빼고는 더할나위 없었어요.

그렇게 영겁같았던 일주일이 지나갔고 약속 당일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제도 과제때문에 반강제적 야근을 했던지라 오늘도 야근이 있을지 모른다고 미리 연락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퇴근 시간 무렵 갑작스런 부장님의 맥주한잔 제안도 거절하며 그녀의 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저는 이런 답변을 받았습니다.

'좋은분인것같아 계속 연락 하고 지냈지만 저 사실 3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진지 한달도 안됐어요.
그때 처음 지하철에서 말 거실 때까지도 남자친구가 있었거든요..

헤어지고 일다니면서 잊고지내며 이런 좋은 분도 있구나하고 알아가보자 했는데 막상 만나려하니 못하겠어요ㅠㅠ
사실 약속도 지키고자하면 어떻게 해서든 지킬 수 있는데 과제 때문에 못 본다는건 사실 핑계에요..
만나서 더 친해지고 하기 전에 말씀 드리는게 좋을것같아서 솔직하게 말해요ㅠㅠ

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저는 아직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안된 것같아요.. 이제막 사회초년생이라 일에 빠져 살기도 바쁘고..
좋은분이니까 더 좋은 사람 만나실거에요
더이상 연락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미안해요ㅠㅠ'

지구가 심장만 중력 10배로 끌어당기는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약속을 늦게 잡은 것도 그녀 나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나봅니다. 저는 애써 감정을 추스리며 답장을 했고 그게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먹먹하네요 ㅎㅎ 안타까운 건 조금 많이요 :)
처음 뵈었을 때 뭔가 홀린듯이 그렇게 말 걸었었어요. 뭔가 씌인것 처럼 ㅎㅎ
그날 면접 보신 회사 다니는 친구한테 계속 연락해서 합격한 사람 혹시 알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했고 결과 발표 났을 때 다른 분이 합격한거 확인하고 엄청 안타깝기도 했구요 ㅎㅎ
다시 만났을 땐 정말 반가웠어요 이런 게 인연인가 싶기도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특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난데없이 혼자 뛰어들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연락은 이제 그만 드릴게요☺️ 하지만 출근길 퇴근길에 혹시라도 또 마주치면 피하지는 말아요. 그런 에너지 소비 안하시도록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갈게요.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을 했어요 덕분에 ㅋㅋ

그리고 예뻤다고 한 건 진심이였어요.
감사합니다.'


며칠 안 된 이야기긴 하지만 아직도 안타깝고 계속 생각이 나네요. 이렇게 여기에 글을 남기고 있는 걸 보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첫 댓글에는 운명을 부정한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저 그녀와 제가 운명이 아닐 뿐이네요.

그리고 그 걸 알면서도 저는 어제도 그리고 오늘 출근길에도 괜히 그녀를 다시 만났던 그 곳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결제해야 하나요?? 현기증나요!!

두 개로 나뉘어있던 글을 하나로 합쳤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