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공감된다.....

난 늦둥이 막내딸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혼하셨음. 이혼만 그 때 했지 나 7살 때 쯤부터 엄마가 아빠 몰래 나 데리고 집 나가서 찜질방 가서 자기도 하고 그랬음. 우리아빠 분노 조절 장애라 화나면 다 부수고 던짐. 핸드폰은 기본이고 선풍기 같은 것도 몇 번 부서져서 새로 사고 그랬음. 30년 넘게 공장 운영하셔서 힘이 장난 아니셔서 서랍장도 바닥에 내다꽂고 거실에 성인 남성 둘이 들어야 들 수 있는 나무 상이 있는데 그런 것도 다 뒤엎고 그러심. 집 더러우면 다 갖다 버린다고 쓰레기봉투에 언니들 방 물건 안가리고 다 담아서 내놓고 그랬음. 밖에선 아무도 그런 사람인줄 모르고 저런 호인이 어디있냐, 사람이 참 좋다 이러는데 집에만 오면 밖에서 쌓인 화를 다 풀고 그랬음.

아빠가 초등학교 2학년인 내 앞에서 엄마 머리채 잡고 끌고가면서 때리는 것도 다 기억나고 큰언니가 고등학교 때 술 드시고 오셔선 언니 늦게까지 핸드폰 한다고 자라고 했는데 말 안 듣는다고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새벽 내내 때려서 큰언니 마스크 끼고 학교 다닌 적도 있음. 작은언니는 제일 많이 두들겨 맞았음.

난 늦둥이라 어릴 때부터 특히 예뻐하신 것도 있지만 난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아빠 앞에서 안 좋은 기분 드러내 본 적이 없음. 방에서 누워서 자다가도 방 밖에서 아빠가 이름부르면 바로 눈 떠서 대답부터 하고 바로 후다닥 일어나서 나갔고 내가 뭘 하고 있든 아빠가 부르면 다 중단하고 아빠한테 달려나갔음. 아빠가 업무상 운전을 좀 길게 하시는 편인데 나는 눈오는 날이면 눈 온다고 전화, 비오는 날이면 비 온다고 전화해서 운전 조심하라고 많이 함. 실제 걱정돼서 그러는 마음도 있지만 아빠한테 예쁨 받으려고 하는 마음도 솔직히 꽤 있었음. 아빠 기분 안 좋아보이면 바로 그 옆으로 뽀짝 가서 괜히 푼수처럼 아무것도 아닌 거에 말걸고 난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느낌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아빠 엄청 추켜세워주고 그랬음.

그것 덕분인지 난 아빠한테 맞아본 적도 없고 아빠가 두 언니들에 비해 티나게 날 챙겨주는 편임. 일이 바빠서 집에 주말에만 오시고 평일엔 공장에서 지내심. 언니 둘 다 성인된지 한참이고 나만 미성년자 끝자락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맨날 나한테만 전화해서 안부 묻고 밥 먹었냐 물어보시고 그럼.

난 아빠가 막 싫지는 않음. 한 번 씩 집 뒤엎는 것도 솔직히 말하면 익숙해졌고 그 때만 잘 사리면 아빠 기분 가라앉고 그 후에 그 짐들 다 정리하고 그 날 저녁에 또 옆에 붙어서 알짱거리면 아빠 금세 기분 좋아지셔서 족발 시켜드시고 술 한 잔 하고 주무시고 하심. 그렇다고 절대 아빠가 안 무서운게 아님. 아빠가 좋지만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빠가 너무 무서웠고 내가 20대 후반, 30대가 돼서도 아빠가 무서울거임. 제일 친한 친구 둘 정도는 가정 사정을 다 아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좋냐고도 많이 얘기함. 나도 모르겠음. 기분 좋을 땐 재밌고 유쾌한 아빠인데 내가 그 때의 아빠의 못 잊어서 그럴 수도 있고...

이건 다른 얘기인데 부부들 맞벌이를 하는건 좋은데 그건 집에 애를 봐줄 사람이 있을 때의 얘기임. 여기서 말하는 애는 막 어린애들이 아니라 고등학생까지도 다 포함됨. 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혼자 알람 맞춰서 일어나고 아침은 굶고 점심 급식 저녁은 무조건 편의점이였음. 주말엔 집에 있는 육개장 사발면, 아니면 또 편의점. 그 때부터 안 먹어본 편의점 음식이 없음. 아빠는 아침에 나가서 밤에 오시고 큰 언니는 고등학생이여서 야자했고 작은 언니는 노느라 안 들어옴. 집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있던 기억 밖엔 없음. 혼자 컴퓨터하고 티비보고 종이접기 하고 집에 같이 얘기할 사람이 없었음.

그 땐 혼자있는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라 외로운지도 싫은지도 몰랐음. 심지어 좋다고도 여기며 살았는데 고등학교까지 와서 10년만에야 알았음. 내가 외로운 사람이고 나는 아동학대를 받으며 살았다는걸 뒤늦게 깨닫게 되면 그 후폭풍 무시 못 함.

초등학생 때부터 소풍, 수학여행 가면 다 거기 가서 컵라면 사먹었고 집에 가정통신문 가져온 일이 없음. 학부모 참관수업은 어차피 못오니까 라는 생각으로 내가 다 X표 쳐서 냈고 그 외의 가정통신문도 다 혼자 읽고 버리고 그랬음.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들어와서 생활기록부 같은걸 연말에 받아도 아빠한테 보여줘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음. 그래서 나 혼자 보고 넘겼는데 아빠가 뒤늦게 발견하고 살짝 서운해했다는 얘길 들었음. 근데 난 그게 아빠한텐 안 보여줘! 라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이걸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음.

엄마는 같이 안 살고 아빠는 일 때문에 바쁜거 나도 잘 이해함.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함. 아무리 그래도 한 번 씩 내가 불쌍할 때가 있음. 갑자기 학교에 있다가 폭우 내릴 때 친구들 다 부모님이 우산 들고 오는데 나만 아무도 연락도 안 받고 아빠는 자기가 그걸 어떡하냐며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라고 했음. 비 맞고 홀딱 젖어서 집 가고 가방에서 젖은거 꺼내서 말려놓고 욕조에 앉아서 조금 울었던 것 같음. 고등학교 3년 내내 학부모랑 같이 상담하는거 가정통신문 조차 아빠한테 보여준 적 없음. 어차피 못 오니까. 학원 보충수업 때문에 밤 1시에 학원에서 나온 날도 애들 다 학원 앞에 부모님 차 있어서 타고 갔고 난 여자애들 중에 유일하게 혼자 걸어서 집 갔음. 한겨울 새벽 1시에 30분 동안 덜덜 떨며 집가고 다음날 감기 걸렸음.

쓰다보니 뭔가 너무 길어졌음. 솔직히 너무 길어서 다들 안 읽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읽어준 사람들 있으면 감사하고 애 옆에서 잘 챙겨줄 자신 없으면 그냥 낳지 말았으면 좋겠음. 애는 놔두면 알아서 큰다는 몰상식한 사람들 있는데 그런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애 낳아서 기르면 안됨. 애는 경제권도 없고 혼자 할 수 있는게 없음. 아무리 독립적으로 잘 살 것 같은 아이라도 애는 애임.

와... 저런 이유 일 줄 은 몰랐다

몇 년동안 눈팅만했지 가입한적이 없었는데 님 글 보고 토닥토닥 해주고 싶어 가입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컸다고.. 그리고 그런 힘든 기억은 이제 잊고 사시라고 말씀드리고파서요..
나도 어릴적 아빠의 기억이 좋지 않기에..
딸을 낳고 아이를 키운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새삼 부모란게 참 어렵고도 힘든거구나 깨달아요.
옆에 있음 엄마처럼 안아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