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지 일년 조금 넘은 여자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233529No.13912017.02.14 04:01

글이 길어질 예정입니다
스압을 싫어하시면 읽지 마시고
남의 연애얘기 좋아하면 읽어주시고
어떤 리플이라도 감사하겠습니다




재작년 초에 일하던 업체의 다른 부서에 그녀가 신입으로 오면서 알게 되었고
타 부서끼리 인간적인 교류가 많은 곳이었고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외진 곳이라 사내에서 다들 절친으로 지내는 곳이었는데
둘이 생각도 잘 맞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서 서로 베프가 되어주자 하던 차에 제가 먼저 결심을 굳혔죠

푸쉬하고 거절당하고 밀당하고 몇번 울고불고 하다가 6월 쯤 연인사이로 확정했구요
그 후로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사내 연애가 금지인 분위기라 아무에게도 말 않고 몰래 만나는게 힘들면서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서로 성격차이 등으로 크게 다투기를 몇번
11월 말에 결국 끝났습니다

처음엔 끝난지도 몰랐죠
평소 다툴 때처럼 며칠 이러다 다시 좋다고 찰싹 붙겠지 했지만 정말 끝이더라구요
연인끼리 싸움에 잘잘못은 중요치 않다고 봅니다
그건 따지기도 어렵고 잘잘못의 비중은 당사자조차도 알기 힘든 것이니까요

중요한건 절 너무 심하게 내쳤다는 거였습니다
잘 지내란 말 한마디 없었고
톡으로 대충 통보하고 화만 냈고
그 후에 하소연좀 들어달라고 사정해서 만났지만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거냐 식으로 화만 냈고
심지어 제게 보낸 마지막 톡도 짜증이었으니까요

그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두번에 걸친 자살 시도도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블랙 코미디같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지금도 살아있는게 다행이다 생각은 합니다
암튼 하루 한두번씩 직장에서 스칠 때마다 밀려오는 괴로움
아니 아침에 눈떠서부터 오늘도 몇번 마주칠텐데 어쩌지 하는 걱정
그런게 너무 견딜 수가 없어서 6월에 퇴사했고
작년 말 근처 대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올때 좀 찝찝하더군요
그녀 본가가 근처였거든요

근데 이사 얼마 후 연락이 오더군요
거기로 이사갔단 소식 들었고 자기도 퇴사해서 그 동네 갈거라고
언제 시간되면 한번 보자 하더라구요




그래서 약속잡고 좀전에 보고 왔습니다
밥먹고 커피마시고 왔죠
하도 반갑고 밝게 굴길래 너무 얄밉고 속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 끝낸거 자기도 미안해서 사과라도 하고싶고
뭔가 풀어야 내가 힘들어한게 해소될 것 같았다고 하기에
뭐 다른 사심은 없겠지 하고 저도 제 얘기를 풀었습니다
웃으면서 하다가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평소 결심대로라면 오만 악담을 다 퍼붓고
넌 끝이다 평생 그런 바닥의 인성으로 살아봐라 라고 외친 뒤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고
그냥 그간 내가 있던 일 죽으려고 했던 것
덕분에 골병도 많이 얻고 생활도 많이 엉망이 됐지만
결론은 그래도 용기내서 풀자고 만나줘서 고맙다 했습니다

제나이가 벌써 30후반이고 저도 많은 사람을 만나 봤습니다
상처주기도 받기도 많이 했구요
제가 알고 보니 세컨드인 적도 있었고
돈이 떨어지니까 잠수타는 사람도 봤고
정말로 돈 떼먹고 도망간 사람도 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잘못에서 받은 상처를 다 합친 것보다도
그냥
사귀는거보다 헤어지는게 이득이니까
헤어진 뒤에 상대가 어떻게 되든 자기랑 상관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내치고 자기만 득보면 되는 그 이기심이
그대로 마음에 와닿은 충격이 더 컸습니다

오늘 만나서 얘기하면서 비록 심한 말은 못 해줬지만
저 기분이 전달은 됐는지 그녀에게서 미안함을 조금은 느꼈습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와서 톡을 보내면서 서로에게 고맙단 말도 많이 했구요
미안해서 다신 날 못 보겠다고 했지만 난 상관없고 정말 괜찮으니 언제든 연락해도 된다고 나름 대인배스럽게 마무린 했습니다

일년 좀 넘었으니 헤어진 지 오래 됐지만 좋아하는 감정은 남아있더군요
다시 돌아와서 그때처럼 달콤한 사이가 되고 서로 잘못을 깨달아 제대로 잘해보고 싶단 생각이 왜 안들겠어요

하지만

소용없다는걸 알겠습니다

그 이기심의 본모습을 봤기 때문에
정말 그때 미안했다고 다시 잘해보자 해도
제쪽에서 겁이나서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제 자신이 보입니다


그녀는 절대 저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그렇게 헤어지진 않았을 거니까요
그냥 내가 자길 좋아해주고 잘해주는
그 상황이 좋았던 것 뿐이지


실제로 작년엔 연애고자가 돼서
어떤 사람을 보거나 만나도
어차피 헤어질거 좋아하면 사귀면 같이자면 결혼하면 뭐하나
어차피 헤어질거
이런 사고밖에 못하는 사람도 돼봤거든요
지금은 좀 낫지만





여튼 이제는 좀 잊을 수 있게 된 듯
속이 후련합니다
시원섭섭이란 말이 딱 맞네요


긴 글의 결론은 뭐냐면요
여러분은 누군가와 사귈때
헤어지는걸 잘 하세요
잘 해어지라는게 아니고
헤어질때 잘 하셔야 합니다

실연의 상처는 소중한 가족이 갑자기 죽었을 때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겪어보신 분은 아시겠죠
정말로 좋아한 적이 있다면
또 상대가 나를 좋아했다면
헤어질때
그사람 마음을 조금은 생각해 주세요
모든 사람에게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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