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굉장히 큰 슬럼프가 왔습니다...(글이 깁니다)

667559No.26012017.04.09 23:11

한번 익명게시판에 글 적어 올려봅니다.
혼자 쓰던거라 반말로 써있는 점 양해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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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대학교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군대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거기서 대체복무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여러가지 트러블과 슬럼프를 겪고 현재 말 그대로 나자빠진 상태이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른채 나에 대한 비난만 하고 있는 상태고,
그냥 빨리 군대나 갔다오라는 말 뿐이다.
동생은 현재 삼수생. 공부를 잘 안 했고, 나와 비교를 당하는 스트레스도 겪고
참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많은 고민이 있다. 시작은 이랬다.
작년 2학기에 난 학교에서 발달심리학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듣다보니 누구나 그렇듯 나 자신에게 그걸 대입해보게 되었다.
근데 난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심하게 왔다.

난 초등학교 2학년 여름에 아빠를 따라 미국에서 1년간 유학을 갔다.
아빠께서는 뉴욕에서 일을 하셨다. 난 홈스테이를 했고, 백인 학교를 다녔다.
당시에 나는 영어를 아예 못했고, 자연스럽게 왕따 학생이 됐다.
멀쩡한 아이였지만 말을 못하니 특별취급을 받았다.
수업을 듣는게 아니라 따로 정신에 문제있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혔다.
홈스테이하는 집에서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집 주인은 이혼한 싱글맘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언제나 놀림감이었다.
"가분수","머리가 크다" 등 툭하면 놀려댔던 기억이 있다.
같이 홈스테이를 하던 그녀의 딸과 다른 형이 있었는데
그 둘에게도 언제나 외면당했다.
매일 지옥같은 하루였는데, 아빠께서는 한 달에 한 번 오셨던 것 같다.
힘들게 달려온 것을 알기에 그 어린 나이에 난 힘든 거 없냐는 질문에도
아무 일 없다며 넘겼고, 어느새 혼자 아픔을 누르고 있는 그런 애늙은이가 됐다.

발달심리학 수업을 듣고 나니 미국에 다녀온 그 기억들이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확실히 내 기억의 대부분은 좋지 않은 기억이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나 스스로 그걸 억누르고 잊어버리려고 했던 기억도 있다.
(더 할 말이 많고, 고통도 많지만 생략하기로 하겠다...)

문제점을 발견하니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다보니 강의에서 배우는 것들이
내게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내 전공을 택하고 목표를 택한 이유도
부모님께서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위주로 강조하셨고
난 그거에 따랐고, 좋아하는 것 딱히 없이 아빠의 길을 비슷하게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흐지부지 학기를 마쳤고,
어찌저찌 하여 군대를 가는 결정을 하면서
동시에 학교에서 하는 심리상담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초반에는 그날그날의 문제점들,
특히 군대 문제나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위주로 얘기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다시 나의 문제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의 일들과 다녀온 후의 일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내가 너무 담담하게 제3자의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얘기한다는 것에 놀라셨다.
사실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나에겐 남아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얼마 전에 와서 더 큰 문제를 찾았다.
바로 가족. 우리 가족은 소통이 없다. 얘기를 거의 안 한다.
부모님 두분 다 일을 하시고, 우린 언제나 저녁 이후에 엄마를 보고,
잘 시간 즈음에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주말에는 비슷한 패턴으로 먹고 자고, TV 보고 소파에 누워있고, 그게 다였다.
특별한 일은 나가서 밥을 먹거나 멀리 나가서 영화 보고 쇼핑을 하는 것 정도.

그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내가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줄 모른다는 것.
또 어릴 적부터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
상담사분께서는 그 시작이 부모님일 것이라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부부여서 내가 늘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맡겨졌었는데
그분들도 무뚝뚝한 스타일이셨고, 부모님 또한 물질적인 충족만을 거의 생각하셨다.
심리적인 안정감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단순히 나는 어릴 적부터 열심히 하고 잘하고 노력해야 하는 걸 최우선으로 배웠다.
내가 잘하면 그건 당연한 듯이 여겨졌다.
자세하게 얘기하면 아빠께선 장난식으로 "잘했네~" 정도였고
엄마께서는 "앞으로 더 잘해야지"라는 식으로 항상 해왔던 것 같다.
난 칭찬을 듣고 싶었을텐데...
못했을 때엔 확실한 체벌과 잔소리가 따라왔다.
어릴 때의 기억에는 별로 없지만, 나에게 부모님의 이미지의 90%는 잔소리다.
엄마께선 어릴적부터 챙겨주시는게 많았는데 그게 영향으로 혼자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엄마의 잔소리가 거의 다인데 시키는 것도 참 많고 좀만 못하면 뭐라 하시고 그랬다.
아빠는 과묵하게 가만히 계시고 아무 말도 안 하시다가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게 있으면 그거에 대해서 구박하시는 거였다.
두분 다 딱히 얘기도 안 했으면서 잘못만 하면 그거 가지고 화내고 뭐라 하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나는
1.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난 자라오면서 부모님한테 공감이나 칭찬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잘하는 건 당연히 해야할 것이었고, 못하면 꾸짖고 잔소릴 들었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기질이 생겼다.
원래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듣는 사람으로 남는데
이런 기질 때문에 듣는 입장이면서 동시에 혼자서 불편한 느낌이 들고
'이 사람들은 내가 없어도 딱히 상관없나보다'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또 괜히 사람들이랑 얘길 할 때 내 의지와는 다르게 허세를 부리곤 한다.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는 굉장히 나서서 까부는 느낌의 애였다.
성격은 안 그런데 사람들한테 눈에 띄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서
괜히 나서서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잘한다는 걸 보이고 싶어했다.

2. 내 감정을 억누르고 쉽게 밖으로 빼내지 못한다.
이건 외국에 나갔다 온 후부터 생긴 것 같다.
1년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울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내 마음 속에 꾹꾹 눌러두고 있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부모님께서 얘기하면 아닌 척 연기를 했고
어느새 부모님은 그걸 당연히 여기시는 것 같다.
(사실 군대 가면서 심리상담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미국 갈 때 얘기냐' 하면서 말을 툭 던졌을 때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서운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해주지 않는 걸 그 한마디 만으로 느꼈다.)


3. 무기력하고 자신감이 없다.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게임만 하는 폐인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기타를 치고 동네를 달리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하지만 기타와 관련해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이 쌓이고
오랜 기간 기타를 쳐오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보니
내 실력에 대한 만족감이 너무나도 떨어져서 이젠 치지 않는다.
또 운동은 요즘 공기가 안 좋다는 핑계도 있고
집에서 '방콕' 생활이 너무 편해진 것도 있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어느샌가 너무 편해져버려서...

또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이젠 듣질 않는다.
기타와 마찬가지로 노래를 듣다보면 예전의 일들이 떠오르고
그때의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다.
노랠 잘 못 부르는데 종종 노래방에 갔다가 제대로 부른 적이 없는 기억도 있고
내 목소리가 싫은 것도 있고... 노랠 부르는 생각 같은 것도 들어서 힘들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많이 듣곤 하던게 귀 건강도 안 좋아져서
사람들 목소리가 제대로 안 들린 적이 있어서 그게 자극이 되어
이어폰이란 걸 아예 안 쓴지도 꽤 됐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 방법 없이 금방 화를 내게 됐다.

이젠 잘하는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도 성적이 너무 안 좋아지고 해서 휴학을 했고
취미생활로 했던 것들도 이젠 너무 하기 싫은 것들이 됐다.



사실 이 글은 쓴 계기는 방금 겪은 일 때문이다.
요즘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막 대한다.
아빠는 아무리 봐도 미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이 오락가락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쁜 내 새끼"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이 개XX야" 등의 욕을 남발하며 남과 비교하고 무작정 언성부터 높인다.
엄마는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
동생이 삼수를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계기인 것 같고, 아마 갱년기가 더해졌을 것 같다.
나와 동생에게 비슷하게 화를 툭하면 낸다.
예전에는 잔소리 정도로 느껴졌던 말들이 요즘에는 그냥 화를 내는 것이 됐다.
이유는 알겠지만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좀만 더 심하면 욕할 것 같은데...


전에는 하지 않던 "모르겠다"란 말이 자꾸 입에 맴돈다.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번에 상담사 선생님께서 내준 과제가 하나 있다.
"부모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떠니?"
첫 대답은 "모르겠어요"였다.
이젠 부모님에 대한 감정이 없고, 철저히 남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연결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다음 상담까지 고민을 많이 해봐야곘다. 내 감정이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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