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숲은 끝나지 않는다 - 김이강.

938440No.126012018.07.06 08:01

그해 여름에 우린 좋았어요
아무것도 오지 않았죠
비도 눈도 매 주 한번씩 과일과 채소를 배달해주던 사람도, 다음 주말엔 오겠다고 전활 걸어 온 이모나 고모, 삼촌들도 깊은 곳도 아니었는데 우린 꼭 그 숲에 갇힌 사람들처럼 식량을 아끼고 전기를 아끼고 수도를 아끼며 지냈어요
아버지와 동생들이 산책을 나가고 이제는 쓰임이 없는 우물 앞에 서서 당신과 난 꼭 물이 차오르진 않았나 확인을 했죠
그건 우물이 아니라 깊은 덫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린 나중에 이야기했어요
보이지 않는 저 깊은 곳에서 우리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동물들이 쓸쓸히 죽어 가고 있을지 모를

여름이 한창인데도 당신은 겨울을 걱정했어요 우리의 모든 것이 너무 얇지 않느냐고
나는 꼭 성인처럼 당신께 말했어요
무심해야 단단해질 수 있는 거예요
아버지는 동생들과 돌아온 저녁이면 가방을 풀어 몇 가지 열매들을 꺼내 놓으며 그날 본 길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북쪽의 자작나무 숲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길이 여러 갈래로 변하는 착시가 생긴다든지, 남쪽 관목 숲으로 난 길의 흔적은 바다 방향으로 흐른다든지, 그런 것들을 몰라도 우린 언제든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하곤 했죠 아직은 모든 것이 남아있는 여름

그 무엇인가 올 것도 같았는데 당신은 단지 비를 기다렸나요 전설처럼 이 숲에 남아 쓸쓸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아버지가 오래 다듬어 놓았던 길로 걸어 나가서 수북한 식량들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생각했어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고 모두 단단해져 가는 동안 오로지 엷은 피부의 당신만이 이토록 수북하게 마음을 들여 이 여름을 연장하고 있다고 어느 날 꾼 꿈속에서 우물 속으로 들어간 당신은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저 깊은 바닥에서 외쳤죠 우리의 숲은 끝나지 않은 것이란다, 끝나지 않는 동안 숲이야, 잠에서 깨었을 때 처마에서는 고여 있던 빗물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어요

젖은 땅에 선 당신의 얼굴
그해 여름이었어요
좋았다고 이야기하게 될,


김이강 시인님은 많이 알려진 시인이고 또 제겐 첫사랑 공대 오빠같은 느낌? ㅎㅎ

가장 좋아하는 시는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제목을 가진 글이지만
독자의 사연을 읽고 글로 쓴 이 글 역시 참 좋더라구요.
불금이네요! 모두들 행복한 하루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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