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꺼지지않는 이슈 키워드인 페미니스트(속칭 꼴펨)
에 대하여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1. 어차피 절대 온전한 결론은 안남.
이 덜떨어진 애들이 (줄여서 꼴펨이라 칭함) 떠드는 것은 애초에 주장이 아님.
처음부터 요구가 있고, 그에 따른 논리가 있다면 정반합이 통하겠지만, 꼴펨들은 하나의 조직이기 이전에 여자들임.
여자들은 정신을 놓은 순간 말이 안 통함. 뇌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
'자 그래서 니들 하고 싶은 말은 ~거지?, ~부분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는 아니지,
그렇다면 우리가 ~한 결론을 내보면 어떨까?'
라는 정반합의 원리가 애초에 통하지 않는 게 여자임.
총보다는 펜을 잡고 싶다 그랬을 때, 장관이 '그래서요 깔깔깔깔' 웃는 건, 교양이 떨어진거 이전에 여자이기 때문.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커플 남녀가 싸우는 이유도 논리가 안 통하기 때문.
"영숙아 그래서 왜 화가 났어?"
라고 하면 '오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그게 더 빡쳐."
라는 패턴과 꼴펨들의 노이즈는 같은 거임. 절대 해결 안 됨.
(단적으로 강남역 피해자의 오빠가 추모를 변질시키지 말라며 지극히 상식적이고 타당한 말을 하니,
'본질을 흐리지 말라.', '너 역시 한남충이다.'라고 말하는 애들임)
여자라는 존재는 일단 맛이 가면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왜 나랑 같은 생각이 아니야 빼애액'하게 됨.
고로 저 꼴펨들의 행진, 집회, 주장, 운동 모든 것들은 그런 이상적 발전향이 아닌, '단비 꺼야'에 불과함.
진화심리학적으로 애초에 여자는,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세계관임.
운전을 하면 내가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닌, 도로가 나에게 오고 있다고 받아들임.
그래서 황당한 곳에서 유턴을 하거나, 사고가 났으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엑셀을 더 밟아버려 사람을 다져 죽이는 이유도 다 그 때문.
내가 세상에 속해 섞여 움직인다는 개념이 애초에 아님.
고로 나와 다른 무언가가, 다른 것을 말하려 하면 그냥 엑셀임.
따라서 논리로 결론 날 문제가 아님. 서로 목소리 키우면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게 되어 있음.
여자랑 어떤 일에 대해 목소리 키워서 논리 정연하게 화해해 본적 있음?
여자 몇 천 명 봤지만 그런 적 없음.
남녀의 주장과 주장의 싸움 끝에는 결국 틀어짐이 있음.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됨. 그게 결국 우리가 반가움을 가질 이유임. 그 이유를 계속 써봄.
2. 고름의 역사.
분명 인간은 고등생물임.
정글의 사회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이지만 우리는 공부를 좀 못한다고, 운동을 좀 못한다고 타인을 찢어죽이지 않음.
하지만 내가 느린 가젤이었으면 치타에게 사지가 뜯겼을 것이며, 약한 치타였다면 까마귀에게 눈알을 파 먹히며 아사했을 것.
남자는 모든 신체적 조건에서 여자보다 상위에 있음.
간혹 여자는 남자보다 어떤 부분이 더 뛰어나다고 짐작만을 하지만, 인류 역사상 단 한 건의 그런 팩트가 없음. 심지어 평균 아이큐도 5 이상 낮음.
우리가 고등생물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서로를 찢어 죽이고 다녔을 것.
비단 남자건, 여자건 나눌 필요 없이 나보다 약하다면 그랬겠지.
그러나 고등생물이기 때문에 점차 안정시켜가는 것임. 여성의 인권 신장도 그러함.
쉬운 말로 '좋은 게 좋은 거지'를 행하는 것. 사회용어로 정치적 올바름(PC)과 같은 것.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올바름은 사욕을 어느 정도 묵인하고 들어가는 것임. '나는 ~을 할 수도 있지만, 지성이 있으니까 그래선 안 돼!'라고 억제하는 행위임.
막말로 여성 할당제 같은 걸, 그게 지당하고 옳으니까 논리적으로 승인하는 거임? 신발 왜?
우리나라가 교육에 차별이 있나, 기회에 차별이 있나 뭐가 있나. 여자면 학교 못 감? 여자면 면접 못 봄?
그냥 참는 거임.
다 받아드릴 수 있는 그런 철인, 성인들로 진화할 수도 있겠다마는 결국 참는 것은 고름이 되게 되어 있음.
하지만 고름은 고름일 뿐, 언젠간 터져야 하는데 터지지만 않을 뿐이니 계속 좆같이 불편한 것.
3. 꼴펨이 필패하는 이유.
'여성에게도 참정권을!'은 명백한 요구가 있었음.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노이즈들은 절대 성공하지 못함.
가령 위의 2번과 같은 이유로 남자들에겐 선택권이 많음. 왜냐 경쟁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거든.
심한 비약이긴 하지만, 남자는 적어도 뭘 하더라도 인류의 50%는 이길 수 있거든. 남자니까.
아니 일단 기본적으로 전 인류의 역사상 여자가 세운 나라가 단 한 곳이라도 존재함?
이 모든 것은 역사가 증명함.
단적으로 뉴질랜드의 페미니즘이 폭망했지.
미친 꼴펨들이 미쳐 날뛰니 남자들이 선택한 것은 나라를 뜸.
결국 지들 부양해줄 젊은 남자들, 결혼해서 책임져 줄 가장 대상자들이 나라에 없음.
능력 있는 남자들이 거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거든.
결국 덩그러니 남아있는 여자들이 선택한 것은 매춘밖에 더 있나. 그렇게 폭망한 좋은 케이스로 지금 남아있지.
페미니스트들이 싹 다 집권하다가 결국 전부 물갈이 되었지.
뉴질랜드는 백인 남자들이니 이렇게 자국을 떠날 수 있었는데 다른 사례가 또 있지.
일본.
우리나라는 10~15년 정도 일본을 따라감. 일본 상황이 우리나라와 같았음.
그래서 남자들이 뭘 했나. 뭘 하긴 뭘 해 신발 결혼을 안 하지. 나 살기도 좆같게 만드는데 뭐 하러 결혼함?
초식남이 늘어가고, 적당히 지 할일이나 하면서 집에서 티비나 봄.
일본은 저녁만 되면 공중파에서 아무렇지 않게 젖탱이가 나옴.
우리나라는 신발 메디컬 드라마는 병원에서 사랑, 법정 드라마는 법원에서 사랑, 하다하다 군인 러브스토리도 나오데.
그게 왜냐. 여자들만 신발 티비를 보니까 그렇지.
한국 작가들의 창의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님. 요새 애들 보는 웹툰만 봐도 스토리가 얼마나 오지는데.
여자들 입맛에 맞는 프로만 주구장창 쏴줘야 돈이 되니까. 당연한 결과임.
하지만 일본은? 정반대임. 하루 종일 오덕오덕 거리면서 2D와 사랑하거나, AV스타들 꽁무니 쫓아다니면서 티켓파워 보여주는 게 남자들임.
그러니 방송도 남자 입맛에 맞는 것만 나옴. 여자들이 암만 지랄해봐. 방송사들은 돈 되는걸 쏘지.
그렇게 일본 남자들은 여자를 포기하게 됨. 결국 꼴펨 짓하던 여자들이 30대, 40대로 늙어가고.
많이 알려진 용어로 마케이누 ; 패배한 개라는 세대가 됨.
시장 경쟁에서 패배하고, 남자들에게 선택도 받지 못하여 쓸쓸히 혼자 늙어가는 비참한 세대.
그리고 그 선배 세대들을 보면서 지금 내조여왕 젊은 스시녀들이 탄생하는 중.
궁지에 몰린 남자들은, 꼴펨이라는 독약을 먹는 것만큼은 피해야 된다 생각 함.
그렇게 꼴펨들은 스스로 중독사 함.
쉽게 말해서, 여자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사실 전부 돈으로 해결 가능하기 때문에 필패함.
세수? 가능
가사? 가능
그 외에 심신 안정? 신발 혼자 있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지들이 열심히 심어줌.
그러나 그 돈이라는 건 경쟁의 전리품인데, 절대로 여자는 남자의 모가지를 딸 수 없는 물리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결국 답 정해진 게임이 되는 것.
4. 직시.
그 무엇도 선별적으로 혐오될 필요는 없음. 에너지 낭비이며 사랑하기도 바쁜 인생임. 누구나 아는 사실.
그렇기에 위에 말했듯 좋은 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계속 참아 옴.
의무는 남자가 하고, 전용은 여자만 생기는 데도 '저건 그냥 그런 거지. 괜히 말해봐야 나만 찌질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가만히 있었음.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있다가 생각해보니 존나 쳐 맞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지금임.
냄비 속 개구리가 드디어 온도계를 본 것.
사실상 저 모질이들이 더 날뛰어야 함. 더 날 뛰어야 상식적인 이성과 논리를 가진 사람(남녀 포함)들이 저 깡패들의 실체를 직시하게 됨.
문제는 남녀 싸움이 아님. 조금씩 조금씩 냄비 온도를 올려가면서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저 깡패들의 실체를 봐야하는 것임.
저 깡패들이 더 미쳐 날뛸수록,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정상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됨.
작금의 꼴펨들이 떠드는 것들을 보며 그전까지의 평범한 사람들은, '너에게는 그런 의견도 있었구나, 나에게는 이런 의견이 있는데, 그래 일단 난 인격자니까 너의 말도 한 번 들어볼까?'라며 시시비비가 가능한 프레임인 줄 알았지. 근데 가만 보니 아니야.
'와 신발 이 자식들 이거 그냥 미치광이 싸이코 날강도들이구나!'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되어 가게 됨.
남자들은 더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살짝 맛이 갈 뻔 했던 여자들도 눈치를 보게 됨.
우리가 여태까지 '이런 생각과 말을 하면 찌질한거니까 참자.'라는 찌질 프레임에 갇혀 있던 것처럼, 이제 반대로
'괜히 아쉬운 소리 했다가 저 미치광이 폭도들이랑 같은 취급당하겠다.'라는 프레임을 갖게 되겠지.
그게 지금 이 지랄지랄들의 효과임.
5. 결론.
남자는 남자로서의 행복이 있고, 여자는 여자로서의 행복이 있음. 서로는 그 행복 추구권을 마땅히 가져야 하며, 존중해야 함.
거기에는 그 어떤 우열도 없으며 그 조화가 아름다운 것임.
'우리 자기는 나보다 덩치가 작으니 내가 안아줄게 나랑 같이 가자'라는 사내의 행복과,
'나는 듬직한 우리 자기가 안아주니 얼마나 사랑받는 여자인지 몰라.'라는 여인의 행복은 다른 거임.
물론 위에 써놓은 행복이라는 것도 누구는 싫을 수도 있고, 그 역시 충분히 존중 받아야 마땅함.
근데 거기에 대고, '신발 찌질이자식들아 니들이 덩치 크니까 다리를 잘라야지 좆만이들아.'라고 나오니 황당한 거임.
사실 남자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음. 우리 중 누가 다리 잘리고 싶은데?
내 다리를 잘라갈 바엔 그냥 조용히 혼자 발 뻗고 잘 거임.
그래도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 게 이치니까? 그건 남녀가 똑같은 것이니 애초에 재고할 문제도 못되지.
얘들 논리는 '여자는 약자니까 챙겨라'를 가짐. 그래서 챙겨주니까,
'여자는 약자가 아니다. 우리도 다 할 수 있어'도 동시에 가짐.
그러면서 다 할 수 있으니 주머니에 가진 거 좀 털어내 보래.
1을 택하면 가부장 문화로 돌아가는 것이고,
2를 택하면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지게 돼.
근데 둘 다 택한다하니 이게 깡패지 뭐임.
온도계는 계속 올라가고 있고, 사실 조용히 올라가야 하는데, 존나 시끄럽게 올라가는 중.
그래서 깡패들로부터 기본권을 챙기려는 움직임들은 점차 확대될 거임.
따라서 앞으로 이 번을 기점으로 여자들은 더 난리를 피울거고
반면에 남자들과 정상적인 여자들도 점점 정상화 될 것임
그리고 시기상, 80~90년대 생이 마흔이 되는 시점. 10년에서 15년 정도 안에 많은 것들이 원래의 지당한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함. 보고 배우는 게 있겠지.
꽃이 향기롭냐, 계란 썩은내가 향기롭냐의 문제를 취향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끌어 올 수는 없음.
올드미스, 골드미스 아무리 개지랄 떨어보삼. 누가봐도 비참한 건 비참한 것.
지금 자라나는 어린 여자들에게는 충분히 충격적인 것임.
(비약이지만 막말로 이렇게 선택받지 못하고 생식기가 퇴화되는 애들한테선 더 이상 자손도 안 나올테고.)
무엇보다도 공생하려면,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