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 길고 무거운 제 얘기 한번 보실래요?

917088No.398662022.04.14 08:24

29살, 저번달에 결혼한 유부남 입니다. 첫글이네요 ㅎㅎ

결혼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대가 있었나 생각하다가

일도 없는 김에, 제 과거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좀 긴 얘기를 해볼까 해요.

많이 길고, 진지하고, 지루해요. 그냥 이 글을 쓰는것 자체로도 저는 좀 더 성장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부모님이 결혼하시고 제가 2살때, 엄마가 24살때, 엄마가 다단계사기를 당하셨데요 피해 금액은 당시 약 7천만원 정도

아빠는 화가나서 매일 술먹고 엄마와 형을 때렸고요

제가 3살때, 한날은 아빠가 술을 먹고 조용하더래요.

그래서 엄마가 느낌이 쎄해서 방에가보니 3살짜리 애기를 죽이려고 목을 조르고 있었데요. 그게 저에요 ㅎ

또 어떤날은 만취상태에서 칼로 엄마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데요. (8년동안 치료받아서 현재는 괜찮습니다.)

엄마는 피를 철철흘리며 저를 안고 옆집 아저씨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외갓집으로 도망갔어요.

그 길로 두 사람은 이혼했어요. 저는 엄마가, 형은 아빠가 데려갔어요.

젊은 나이에 너무나 힘든 일을 겪으신 우리 엄마는 저를 외할머니집에 맡겨놓고 멀리 갔데요.

저를 보면 두려운 시절이 생각나서 도저히 돌 볼 자신이 없었데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신 장애인이시지만, 생활하는데는 지장이 없으시기에 저를 최선을 다해 키워주셨어요.

한창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지만 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어요.

시골이라서 어린애기들이 많이 없었어요.

초등학교도 한학년에 20여명씩 1반밖에 없었죠. 그래서 유치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 계속 같이 다녔어요.

초등학교 입학식날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의 손을잡고 학교에 왔어요.

저는 아무도 없이 혼자 있었어요.

혼자서 입학식을 하고, 혼자서 교실에 들어가고, 혼자서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듣고, 또 혼자서 다 이해해야 했어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셔야 했기 때문에 못오셨거든요.

친구들의 '너네 엄마아빠는 어딨어?' 라는 물음에 저는 '우리 엄마아빠는 이혼하셔서 안계셔' 라고 말했어요.

8살, 너무 어린나이에 이런 상황을 인지했나봐요.

그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한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니 내가 신경쓸일이 아니다' 라고 당당한척 지냈어요.

그래도 어리긴 어렸나봐요. 혼자 집에 걸어가는 길에 많이 울었어요.

형도 마찬가지였을거에요. 형은 친할머니 집으로 갔어요.

아마 저랑 비슷한 생활을 했을꺼에요. 형이랑은 4살때 헤어지고, 중학교 올라갈때 처음 만났거든요.

기억세포가 만들어지기 전에 엄마랑 생이별을 해서 엄마 얼굴이 기억이 잘 안났어요.

목소리는 알아요. 엄마가 가끔 1년에 1~2번? 정도 전화했거든요. 밥은 잘 먹는지, 학교는 잘 다니는지, 할머니 말씀은 잘 듣는지

저는 운다고 대답을 못했어요.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보고싶었나봐요

12살, 엄마의 얼굴을 거의 처음 봤어요. 가는 방법은 모르지만 엄마가 어디사는지도 알았어요. 이제 보고싶을때 버스타고 오래요. 엄마도 여유가 조금 생겼나봐요.

13살 초등학교 여름방학쯤, 외할머니가 결단을 내리셨어요. 저를 계속 시골에서 키울수 없으니 도시에 살고 있는 아빠한테 보내기로요.

아빠한테 가기 싫었지만, 저도 알고있어요. 시골보다는 도시로 나가는게 내가 더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그해 겨울방학때 아빠가 사는곳에 갔고, 아빠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계셨어요.

그 가정에는 아빠, 새엄마, 형, 새엄마의 아들, 새엄마의 딸 5식구에 저까지 6식구래요.

적응하라고 겨울방학 내내 아빠집에 있었어요. 새엄마는 착하신분이셨고, 새엄마의 아들은 저랑 동갑이라 더 빨리 가깝게 지냈어요.

겨울방학을 그렇게 보내고, 외갓집에 잠시 갔다가 2월에 다시 아빠집으로 갔어요.

근데 집은 다른곳으로 이사했고, 아빠는 없고, 형밖에 없어요.

무슨일인가 물어보니 또 돈때문에 아빠가 술을 먹고 새엄마랑 싸우다가 또 때렸데요.

새엄마는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지만 그 날 새벽,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데요.

그 사건 때문에 새엄마의 자식들은 걔들 친아빠가 데려가고, 저희 아빠는 교도소에 갔어요.

3월 2일, 저는 중학교에 저희 형은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저희둘이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큰아빠집에서 신세를 지며 학교를 다녔어요.

1달정도 지나니 아빠가 교도소에서 나오셔서 조그만 셋방을 얻어 거기에 셋이 살았어요.

아빠는 회사-술-회사-술 을 반복하며 탕진했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형은 고1때 주유소 손세차 알바를 시작했어요.

형이 못나갈때는 제가 대신가서 알바뛰고 했었어요.

중학교 3학년 설날, 형이랑 저는 큰아빠집에 갔어요. 매 명절마다 모이니 차례지내러요.

그런데 아빠가 안입던 한복을 입고있고, 모르는 아줌마가 같이 한복을 입고 옆에 앉아있어요.

우리 새엄마래요.

저와 형은 어른들께 인사만 하고 그냥 나왔어요. 너무 혼란스러웠거든요.

우리한테 말도 없이 새엄마를 데려오고, 오늘부터 같이 살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너무 역겨웠어요.

그래도 같이사는 아빠라고 조금의 정은 있었는데 그때 없던 정도 다 떨어져 나간거같아요.

그래도 그 새엄마가 오고나서 집안형편이 좋아졌어요. 5평 셋방에서 40평 빌라로 이사했어요.

이사하자마자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형은 대학에 갔어요.

고등학교 1학년때, 제 와이프를 처음 만났어요.

뭣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제 빈부분을 와이프가 채워줄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집에 어떤 아줌마가 찾아왔어요. 새엄마 이름을 데며 욕을하며 어디에 있녜요

모른다고하고 욕하지말라고하며 실랑이를 하다가 돌려보냈어요.

바로 그 다음날 정장입은 아저씨들이 4명정도 왔어요.

집이 가압류가 걸려서 경매에 넘겨야 한데요.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노란색 딱지가 붙었어요. (빨간딱지는 너무 위협적이어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나 뭐라나..)

다음날 집에서 쫓겨나오듯 이사를 했어요. 빚쟁이들한테 도망다닌다고 3개월동안 20번 정도 이사를 한거 같아요.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갔다가 마치면 집이 바뀌어 있어요. 버스비도 없는데 어디어디로 오래요..

여름방학때 아빠가 저에게 말했어요

'아빠가 이제 니를 키울 자신이 없다. 니 엄마한테 가든 니 혼자 살든 나가라'

저는 '네, 안녕히계세요' 한마디 하고 가방에 교복, 속옷, 양말, 옷한벌 챙기고 바로 나왔어요.

이사 다닌다고 제 짐도 옷도 저 모르게 다 버렸거든요.

공중전화 1541 콜렉트콜로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상황이 이런데 엄마한테 가도 되는지 .

엄마는 저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데요. 그래서 저는 다시 할머니집으로 갔어요.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할 생각이었어요. 당시 전교 10~20등정도 할 정도였는데 검정고시는 쉽게 합격할것 같았어요.

와이프에게는 모든 상황을 얘기하고 헤어지자 했어요.

저도 와이프도 많이 울었어요. 우는 저를 붙잡고 와이프는

기다리고 있을테니 니가 최대한 노력을해서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나와

할머니한테 부탁을하든 엄마한테 부탁을하든 자퇴하면 평생 안볼생각하고,

무슨일이 있어도 다시 학교 나와, 지금은 헤어지지만 니가 학교에 돌아온다면 다시 만날수 있어

라고 했어요.

이 말 듣고 더 많이 울었던거 같아요ㅎ

저는 자퇴하기로한 마음을 접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1달뒤 다시 학교에 나갔어요.

덕분에 무단결석이 23개가 있지만 그 뒤로는 하루도 빠지지않았어요.

학교까지 거리는 편도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였어요. 새벽 5시 첫차를 타고 나와도 지각이었어요.

학교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편의를 많이 봐주셨어요.

이렇게 6개월 정도 다니니 엄마가 고등학교 근처에 원룸을 얻으셔서 그뒤로는 편하게 다녔어요.

와이프랑도 다시 만나고, 엄마랑 같이 살고, 그 전까지 암울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때는 좀 행복했었네요

대학을 가자니 등록금이 문제였어요.

당시에 아빠가 대기업에 다니고 계셔서 아빠 회사에서 자녀 등록금이 100% 나왔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빠한테 대학 등록금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했던거 같네요.

부산에 있는 대학에 가서,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군대에 갔다왔어요.

와이프는 대구에 있는 대학을 가서 장거리 연애로 잠시 헤어졌었지만, 제가 군대에 있을때 다시 만났어요.

전역을 하고 꽃신을 신겨주고, 제가 다니던 과에 흥미를 잃었어요.

그래서 4개월 정도 준비하고 울산으로 편입을 했어요. 물론 전공도 바꿔서요.

사실 전공을 바꾸게 된 이유는 이력서 쓸때 그 과를 나왔다는 텍스트가 필요했어요.

그때는 성적에 상관없이 졸업만 하면 취직이 다 되는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졸업을 하고, 코로나가 터지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어요.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서 결혼을 하고싶었어요. 그래서 아무 회사나 들어갔어요.

2조 2교대 주야간 현장직이었고, 중소기업이라 청년내일채움공제 신청이 가능해서 2년만 채우고 나오자는 마음이었어요.

소득이 있으니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결혼준비도 하게 되었어요.

와이프와 장인장모님의 안목으로 결혼하기 2년전, 미분양된 신축아파트를 계약했어요.

그때 저는 이제 막 취직을 한 상황이어서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저희 엄마도 제가 이렇게 이른 나이에 결혼 준비를 할줄 몰라서 저를 지원해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와이프를 11년이상 만나고 있어서 결혼을 준비하긴 해야하는데 사회초년생에게 신축아파트는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장인장모님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셔서 아파트는 계속 끌고가서 결국 계약을 했어요.

이제와서 생각하면 집안도 안좋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저를 어떻게 믿고 그렇게 지원해주셨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감사해요.

나중 얘기지만 처음에는 결혼 반대를 좀 하셨데요. 근데 와이프가 저 아니고 다른사람 절대 못만난다고, 평생 같이 살수있을거같은 사람이라고 강하게 얘기를 해서 장인장모님도 당신 딸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결정 하셨다고 해요.

결혼준비를 하며 남으로 지내던 아빠한테 연락을 했어요. 결혼한다고

많이 늙으셨더라구요.

나이가 들고 마음이 누그러져서 결혼식에 아빠가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엄마도 상관없다고 하셨구요.

아빠는 그게 어려운가봐요. 예전에 한 행동이 미안한지, 못가겠다고 엄마랑 둘이서 잘 하고, 본인처럼 살지 말고 행복하라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연애 13년만에 결혼을 했고, 새 아파트에 들어왔어요.

결혼과 동시에 장인어른의 추천으로 주 5일, 40시간 근무에 월급도 이전보다 많이 주는 중견기업으로 이직하게 되었어요.

청년내일채움공제는 2개월 남겨놓고 기간을 다 못채웠지만,

현장에서 일하다가 사무실에서 일하니 일단 지금은 너무 좋네요. 엄마랑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좋아하시구요

그동안 항상 당장 맞닥들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며 살았지만,

요즘은 앞으로 집을 어떻게 해결할지, 2세계획, 자기발전 등 미래에 대해 더 집중을 하게 되었어요.

와이프 덕분에 제가 이렇게 발전 할 수 있었고, 나쁜 길로 안가고 밝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보다 힘든 과거가 있었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요즘이에요.

지루하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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